지나간 일에 대하여
아픔
목이 따끔거린다. 환절기마다 목감기나, 콧물감기에 종종 걸리곤 했다. 올해엔 목이 조금 아프기만해도 감기약을 먹어서인지 조용히 넘어갔다. 가을햇살이 좋아서 토요일, 일요일 연속으로 바깥활동을 했다. 그랬더니, 몸이 반응한다. 새벽 3시 15분, 침을 넘기기 어려웠다. 전기포트에 물을 데워서 먹으려고 주방으로 나왔다. 전기장판도 켜놓고 자고, 가습기도 켜두었다. 오늘은 말하는 시간도 많은데,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단 상담선생님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약속이 있고, 2시간 뒤에 학교 집단상담 수업은 1시간 20분 동안은 집단원으로 말을 해야 한다. 수련하는 대학교상담센터에서 온라인 수업을 잡아주어서 집단상담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조용한 곳으로 달려가서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들어야 한다. 일정 3개가 잡힌 날이다. 그런데 새벽 3시 목이 아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복기
이렇게 되면 과거 일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토요일 날 오후에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몇 시간 놀지 말았었아했는데.'
'토요일 오전에 가을 하늘이 좋다고, 바닷가로 드라이브 가서 초록 언덕에서 뛰어놀지 말았었야 했는데.'
'일요일에 동생집에 갑자기 가지 말았어야 했다. 산책길이 추웠어.'
일요일 밤, 집에 돌아오기로 예정한 시간보다 몇 시간 훌쩍 뒤에 동생집에서 출발했다. 딸에게 말했다.
"다음에도 이렇게 떼부리면 엄마는 이모집에 다시 오기 곤란해."
타박하였다. 오후 1시즈음 도착해서 4시 30분즈음에는 집에 오려했다. 딸아이는 7개월된 아기인 조카가 귀여워서 더 보고 싶어했다. 남편은 저녁에 사무실에 출근하는 걸로 되어 있었고, 나 또한 월요일 일정이 부담스러웠는데, 몇 시간 더 머물기로 했다. 결국 저녁까지 먹고 오후 7시까지 있다가 왔다.
새벽 3시 15분, 식탁에 앉아서 무엇이 잘못 되기 시작했는지 찾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과거에 많은 일들이 그러했었다. 과거에 좋지 않은 결과가 있었으면, 시간 순서상 그 앞에 일어났던 일들 중에서 원인을 찾았다.
남편이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랬다.
"나 오늘 즐겁게 놀고 왔는데, 당신 이야기 듣다보니까 기분이 안 좋아지려고 해. 우리 딸이 토요일도 그렇고 오늘도 즐겁게 놀았다는데 그거에 의미를 두면 안되겠니?"
뒷자리에 앉은 딸이 그런다.
"엄마, 어제 놀이터에서 엄마아빠랑 뛰어다니면서 술래잡기 한 거 정말 좋았어. 그리고 오늘도 00이를 오래 볼 수 있어서 좋았어."
혼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날씨 좋은 가을날, 마침 주말에 시간도 비어있고 가족들과 좋은 시간도 보냈다. 하지만 마무리즈음에 목감기에 걸려버렸다. 목이 따가워서 침을 넘길 수 없을 정도로 아픔을 느끼게 되었다. 주말일정->목감기로 이어진 것이 아니로 따로 따로 생각해야 하는 거였다.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즐거웠고, 가족들도 즐거웠으면 감수해야하는 거였다.
나는 무엇이 그리 불편했던 것일까?
목이 아플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월요일 일정이었다. 또한 이번 주는 일정이 좀 많다. 마음이 부담이 있었다. 그럼 무엇이 그리 부담이었을까?
잘하고 싶었나보다. 상담시간도 잘 맞추고 싶고, 일주일 동안 떠오른 생각들을 선생님과 나누고 싶었으며, 학교 수업시간에 처음 진행되는 집단상담 실습에서 잘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대면수업이 끝난 후, 온라인 수업이 15분 정도 겹칠거 같아서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부담이 되고 있었나보다.
지금까지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다. 감정이나 좋은 기억보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았었다. 그래서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기가 어려웠던 거였다. 그 순간 즐거웠더라도 혹시나 다음 날 좋지 않았더라면 그 앞 기억까지 왜곡해서 바꾸어놓았고, 어쩌면 그 순간에도 즐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다음 날 일정을 생각하느라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말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다.
착각하고 토일을 보냈다. 가족이 내 가치의 가장 우선 순위인데, 내 가치는 잘 지키면서 주말을 보냈다는 이 기억을 만들었다면, 지금의 목아픔과 다음 일정은 영향을 받아도 감수해야는 건지.
'아직도 적당히 주말을 즐겼다면 좋았을텐데 무리했다.'라는 생각이 남아있다.
코로나19 상황이라서 더 부담되는 마음이 올라온다.
이 문장을 쓰고 보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이 올라와서 일지도 모르겠다. 일정변경에 대한 부담, 기침을 하거나 콧물을 흘릴 때 좋지 않은 시선으로 눈길을 끌 것이 미리 불편했졌다.
그렇구나, 미래에 느낄 불편한 마음을 현재로 가져와서 미리 느끼고 힘들어하고 있었던 거였다.
글을 쓰다가
오늘 아침 글을 쓰다가 알게 되었다. 미래에 마음을 현재로 끌어와서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그럼 이번 주는 앞으로 4시간 뒤 일정만 신경쓰면서 살아보자.
일단 아침을 먹고, 이비인후과로 가서 진료받기 전에 상담선생님께 예약연기 문자를 드리자.
'지금 이 순간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