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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Oct 27. 2020

선생님의 상담 연기

불안한 나와 마주하기

문자가 왔다.

선생님이었다. 다음 주 상담을 한 주 미루자는 문자였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약속을 꼭 지켜야 하는 분 아닌가?'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시는 걸까?'

처음 든 생각들이 남아있다. 선생님께 답문을 보냈다. 다음 주에 뵙자고 말이다. 차마 웃는 모양(^^)을 문자에 담을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선생님과는 상담 관계다. 어떠한 느낌을 받았고, 왜 그랬는지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선생님과 첫 만남을 떠올렸다. 상담실에 들어서서,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고, 입구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다. 코로나 19 이후, 상담실 입구에서 온도 체크를 하고, 내담자 확인서를 썼다. 그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9월 둘째 주였다. 첫 상담 날은 태풍이 왔다. 집 앞 도로가 물에 잠기고, 운전을 해서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약속이 중요한가 내 안전이 중요한가 고민했다. 감기 기운도 있어서, 불안하기도 했다. 고민하다가 선생님께 문자를 드렸다. 선생님은 괜찮다고, 다음 주에 보자고 하셨다. 그랬다. 첫 상담을 연기한 건 나였다. 나는 천재지변과 관련된 일이고, 코로나 19 상황에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고 나에게는 면죄부를 주었다. 그러고는 잊어버렸다.

 그다음 주에 선생님을 만난 거였다. 처음에는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금 떠오려 보니 그렇다. 처음 가는 공간에서 긴장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서 마음속으로 고민했다. 상담 공부를 하고 있으니, 나도 앞으로 상담을 잘하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다. 


'잘하고 싶다.'

'잘 보이고 싶다.'


이 마음이 떠다녔었다. 그래서 불안했던 거다. 처음 학년이 바뀌면,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힘든 이유가 그거였다. 잘하고 싶어서. 스스로를 다그치고 몰아붙였다. 겉모습은 웃고, 인사하면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마음속에 있는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작아지는 나를 느끼니 더 불안해졌다. 나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자를 받고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내가 잘 보이기로 마음먹은 대상에게 거부당하는 느낌이 있었다. 다음 상담에 가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문자를 읽는 순간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어요."

선생님과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또 말했다.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었나 봐요."


가족 세우기 작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지금 내가 이루고 살고 있는 가정과 원가족을 피겨로 가족 세우기를 했다. 



판다가 되고 싶었다.


나에 대한 이미지 피규어 3개를 먼저 골랐다. 그리고 지금 가족, 원가족의 이미지 피규어를 골랐다. 신기하게도 피규어를 보니 가족 중 누군가가 떠올랐다. 

선생님이 질문하신 것 중에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

"이 중에 누가 제일 내 모습 같아요?"

나는 판다를 골랐다. 어떤 역할이 아니라 진짜 오로지 나라고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친정에서 나는 새였다. 언제든지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곳은 내가 살고 싶어 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혼을 서둘러한 경향이 있다. 만약 친정이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면 어땠을까.


마음속에 난 판다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자고, 먹고 느릿느릿하게 살고 싶다. 

현재 나는 무언가 되기 위해,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애써서 그 무언가가 되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상담하다가 알게 된 건데 직업에 관한 부분도 있다. 이건 또 다른 글에서)


선생님께서 그러셨다.

"판다는 먹고 자고 해도 존재만으로 인정받죠. 그리고 돋보이고, 어디에 있어도 존재감 있고."

그 말을 듣는데, 뭔가 마음속에서 먹먹함이 느껴졌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애써서 열심히 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자주 그러셨다.

"사람이 예쁜 짓을 하고 그래야 사랑받지."

사 남매를 앞에 두고 자주 하셨던 말이다. 

지금까지는 듣고만 있었다. 최근에 부모님을 만나서 밥 먹는 자리에서 똑같은 말을 하시길래 내가 한마디 했다.

"부모는 자식이 어떠한 모습이라도 사랑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요?

자식이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 그런 것도 아니고 타고난 성향과 기질이 있는데."

아버지는 급하게 다른 말을 하셨다. 

"부모는 열 손가락 다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 " 하지만 더 아프고 덜 아픈 손가락은 있다는 말씀이셨다. 엄마는 요지부동이다. 엄마와 대화는 예전부터 어려웠다. 상담을 시작한 이후에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면 뭔가 예전과 다름이 느껴진다. 더 명확해지면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 감정적으로 대하기보다는 관계 속에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고 할까. 가족 세우기를 한 이후에 그렇다.


자연스럽게 주어진다는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애써서 증명했었어야 했다. 내 존재를. 

그래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현재도 그렇다.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를 할 때 엄마가 나를 대하는 모습과 현재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나, 엄마는 다르게 대한다. 



문어였던 엄마


 내 마음속에 엄마는 문어였다. 여러 개 다리로 다른 사람들 영역을 침범한다. 그리고 장악하려 한다. 하지만 무척추동물이라서 스스로를 세울 수는 없다. 영역은 넓게 펼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은 없다.

"엄마가 자기 영역을 침범해서 많이 힘들었겠어요."

선생님 말을 듣는데 뭔가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엄마는 지금도 그렇다. 어릴 적 나는 나를 버린 원래 엄마가 나를 찾으러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갑자기 그 모습이 떠올랐다. 나에게 집은 밥 먹고, 잘 수는 있지만 마음이 불편한 공간이었다. 아버지 덕분에 경제적으로 힘들지는 않았지만, 뭔가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원가족 내에서 내 모습은 새였다. 


선생님은 상담 초기부터

"ENTJ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의존적이에요." 왜 그런지 궁금하다고 하셨다. 가족 세우기를 한 이후에 이제야 왜 그런지 알 거 같다고 하셨다. 말하는 걸 설명으로 들을 때와 가족 세우기 작업을 한 이후에 가족의 이미지가 더 명확하졌다고 하셨다.


엄마를 찾고 있었다.


선생님의 상담 연기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버림받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건 상담실에서 엄마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기대고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다. 무의식적으로 그랬었다. 회기가 거듭되면서 내 이야기도 털어놓고, 선생님과 대화하면서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나 보다. 엄마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 이야기를 직접 선생님께 하고 난 이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과거 엄마와 관계에서 내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내 생활 속에서도 이런 부분들이 이어져서 사람들 속에서 나도 그랬을 거다. 과거 나를 스쳐 지나갔던 인연들이 떠올랐다.


상담을 하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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