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결과는 내 몫이다
또 이런 적이 있나요?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 기억나는 것은 질문이다. 내 이야기를 듣다가 물어보신다. 처음에는 멈칫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몰랐다. 답할 생각이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글을 쓰면서 이렇게 내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 외에 누군가가 이렇게 진지하게 질문해준 적이 있었던가.
질문
첫 회기에서 선생님은 내 이름을 헷갈려하셨다. 나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다가 불편한 마음이 올라와서 말씀드릴까 말까 고민했다. 다음 회기에 오면 선생님께서 상담일지를 보고 제대로 불러주시겠지 하고 넘어갔다. 2회기 정도까지 다른 이름으로 부르곤 하셨다. 최근 회기(7회기)에서는 나보다 내가 말했던 것을 더 잘 기억하고 계셨다. 나는 말했는지 안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데, 선생님은 비슷한 이야기에 딱 한 단어만 듣고도 기억해내셨다.
같은 선생님께 상담받는 학교 동기가 그랬다.
"선생님께서 나에 대해서 기억해주고 이야기해주시는 점이 좋았어요."
그때 내 마음 속 생각은 이거였다.
'나는 이름도 기억 못하시던데, 나에게만 이런 걸까. 아니면 그 동기에게만 특별했던 걸까.'
회기가 쌓이면서 그 동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거 같다.
지금은 무언가 말하려면, 내가 했던 말이었던가 다시금 생각해보고 말해야겠다는 긴장감도 생겼다. 처음에는 내 안에 있는 걸 많이 꺼내서 털어내려고 했다면, 지금은 조금은 고민해서 꺼낸다는 의미가 맞을까.
아무튼 선생님께서는 내가 한 말들을 기억하고 지난 말들도 쌓인 더미들 속에서 질문을 찾아낸다. 그리고 묻는다.
"결정을 이때처럼 내린 적 있나요?"
질문을 들으면 답변을 딱 맞춤으로 즉각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어떤 질문들은 머뭇거리기도 하고, 어떤 건 아예 대답을 못하기도 했다. 선생님과 그 이야기도 나누었다.
"대답하기가 어려워요."
"대답하기 어려운 건 어떤 마음인가요?"
정확하게 저 질문은 아니지만 다시 되물어셨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대답을 왜 하기 어려운가에 집중했다.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지금은 내 안에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꺼내기 어려운거였다는 마음이 더 크다는 걸 알았다. 내 중심이 굳건하지 못했던거였다. 내 생각이 바르게 뿌리내리고 자라는 경험을 하지 못해서 내 생각을 꺼내야하는 순간이 오면 힘들었던거였다.
나를 지켜본 지인들이 이 말을 들으면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평소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는데 어려움을 별로 느끼지 못했기도 했고, 말한다는 것에 두려움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생님 질문에는 말문이 턱 막혀서 나도 왜 그런지 궁금했다.
내 마음과 관련된 질문들이 그랬다.
선생님의 질문을 받으면서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결정에 대하여
이 부분은 상담선생님과 첫 집단상담 선생님 두 분과 대화를 통해서 알아차리게 되었다. 평소 나름 신중하게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했다. 작은 일들, 사소한 고민들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는데, 큰 일들에 대해서는 유독 급하게 후딱 해치우려고 했다.
돌이켜보면 결혼도 그랬고, 진로도 그랬다. 무언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중간지대에 있다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께서는 그랬다.
"보유하고 있다. 가지고 있어봐도 괜찮아요."
그때는 머리가 하얗게 되었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생각해보니 그렇다. 깔끔하게 결정이 내려지지 않으면 불안했다. 큰 일들은 더 큰 불안이 몰려왔다. 그리고 한 번 결정을 내리면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한 선택과 결과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사십대를 두 달 앞두고 진로에 대해 생각 중이다. 한동안 급하게 자격증을 더 따야하나 싶어서 마음이 쫓기듯 급해진 적 있다. 심지어 강의 결제까지하고 정신 차려보니, 또 다시 내가 성급한 결정을 했구나 싶었다. 취소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몇 번하고 스스로에게 마음 속으로 말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내가 진짜 원하는 거였어? 주변 사람들이 권해서 내 마음에게 물어보지 않고 급하게 진행했던 건 아닐까?'
내 결정에는 주변사람들의 의견이 들어가있었다. 진짜 온전히 나로 결정했다기 보다는 주변사람들의 기대에 맞추려 노력했다. 그래서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남탓도 많이 했던 거였다. 마음 속으로는 '네가 해라고 했잖아!' 이렇게 말이다. 내 주변에는 유독 나에게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내가 뭔가 결정할 때 주변사람들의 말이 많이 휘둘리는 거였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랐다.
선택의 결과는 내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