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의 의미
"스트레스받을 때 몸의 변화가 있나요?"
이 질문을 받았는데, 몇 년 전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둘째가 네 살이었던 2017년 겨울,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남편은 바쁘다고 이야기했고, 두 아이 육아와 내 안에 꿈틀거리는 무언가에 대한 스트레스로 꾹꾹 담아 누르다가 빵 터져버렸다. 원인도 알 수 없었다. 증상은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아팠고, 걸을 때마다 아팠다. 남편은 나의 아픔에 둔했다. 첫 아이 육아 때 남들도 다들 하는 일이라고 했다. 시어머니처럼 말이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프기 전에 거실 구조를 바꾸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집은 네 식구가 살기에 촘촘한 집이라 책장과 책상 구조를 계절에 한 번은 바꾸었던 기억이 난다. 현실에 대한 불만, 불안을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표현했었다. 아파서 끙끙 앓았다. 동네 한의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남편은 집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다른 지방에 뼈를 맞추는 유도관에 가자고 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종종 가던 곳이었다. 새벽 3시에 출발했다. 아침에 1~2시간 정도만 하는 곳이었다. 잠들기 전에 초등학생 큰 아이에게 아침에 갔다 돌아올 테니 동생을 부탁한다고 했다. 큰 아이는 열 살이었다.
"젊은 사람이 왜 이랬대"
아는 사람들만 물어물어 오는 곳이다. 내 순서 앞에는 전라도에서 출발해서 몇 시간을 거쳐 왔다며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부인과 남편이 있었다. 우리는 두 번째였다. 유도관 한편 허름한 방이었다. 바닥에서는 따뜻한 기운이 올라왔다. 아픈 상태로 몇 시간 차를 타고 이동해서 온 몸이 긴장상태였다.
"몸에 힘을 빼세요."
힘을 주기는 쉬운데, 빼는 건 어려웠다.
"힘 빼라니까요."
어떻게 하는 거였나, 싶었다. 항상 긴장하며 살아왔었기에, 몸에 힘을 뺀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어쩌다가 젊은 사람이 이렇게 되었대요. 몸 상태가 안 좋아. 오늘 내한테 받고 나면 하루 이틀 몸살 날 수도 있어요. 그다음 괜찮아지니 걱정 말아요."
어떻게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이 시간이 지나가면 살아있는 시간 동안은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올라간 시간만큼 들여서 내려왔다. 남편은 나를 집에 내려주고 출근했다. 그 다음날 정말 아팠다. 며칠 뒤에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다. 아플 때는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건강하지니 아팠던 느낌이 무엇이었나 정확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담아두기만 했다
남편과의 스트레스, 친정, 시댁과 여러 관계에서 스트레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육아 스트레스 등을 꼭꼭 담아두기만 했다. 주로 혼자 글을 쓰며 풀었다. 동네 가까운 언니 1명에게 아주 가끔 이야기했지,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이해받는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기대감이 없었기에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온몸이 항상 긴장되어 있었다.
내가 만들었든, 남에게 받았든 생겨난 스트레스가 쌓이기만 했고, 풀어지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차곡차곡 쌓인 세월은 버티고 있던 몸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아프면서 느낀 건 하나였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건강하게 살자.'
숭례문 학당에서 온라인 건강 프로그램을 찾아보았다. 걷기, 요가, 스쾃 등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온라인 프로그램이라 특정 시간에 어딘가에 가서 함께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운동한 분량을 인증하면 되었다. 마음 보기라는 명상 앱을 알게 되어서, 마음 돌보기도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몸이 하는 말
대학원 2학기 차에 접어들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시간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엄마, 아내, 학생, 수련생, 간사, 강사 등 맡은 역할 모두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이 느껴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꼭 모든 걸 잘하지 않아도 돼.', '못하는 나도 나니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몸은 아니었나 보다. 작년보다는 여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마을교사도 하고 있어서 10분 단위로 쪼개서 썼었다. 감기 기운이 조금만 올라와도 약을 먹고 곧바로 쉬곤 했다.
월요일 아침,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주말 동안 가을 햇볕이 좋다고 이틀 연속 나들이를 한 탓이다. 예전에는 목표를 위해서 매진하는 시간 외에는 무의미한 시간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주말에 시간이 비면 가족과 뭔가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 19가 오고 난 후, 바깥나들이를 제대로 못한 아이들에게 가까운 놀이터라도 가게 해주려 노력하고, 1시간 거리에 있는 이모집에 놀러 갔다 오고 하는 소소하게 뭔가를 했다. 그 사이 잊고 있는 게 있었다. 나의 휴식시간이었다. 평일에는 학교 수업, 과제, 수련 등으로 정신없고 주말에도 거의 교육 등 일정이 있었다. 틈틈이 가족들을 위한 시간을 채워 넣었으니, 그 속에 '나'는 없었다.
휴식
월요일, 학교 가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돌아온 이후에 누웠다. 잠들다 깨다가 하며 쉬다가 온라인 수업 5-8시까지 들었다.
화요일, 행정간사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오전 시간 동안 처리하고, 학교 과제 작성해서 제출, 온라인 퀴즈 시험을 쳤다.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 집안일을 하고 밤에 잠들었다.
수요일, 둘째가 미열이 있어서 유치원에 가지 않았다. 둘이 같이 장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아프니 장본 걸로 닭백숙을 끓여주었다. 빨래를 널고, 오후에는 월요일에 참여하지 못한 수업 과제를 제출했다. 아이들 저녁으로 삼겹살을 구워주고 저녁 8시 자리에 누웠다. 일어나니 새벽 4시 30분이다.
학교를 가지 않아서 쉬었다고 생각했더니, 뭔가 또 계속하고 있었다.
온전한 휴식 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과 같은 의미일까? 아니면 이전과 달리 마음이 편해졌다는 의미일까.
학교에 가지 못하고, 수련하는 센터에도 가지 못하니 주변 사람들이 걱정해주었다. 푹 쉬어라고 톡이 왔다.
나는 정말 푹 쉬고 있는 거였을까.
선생님과 상담시간에 내 모습 피규어로 팬더를 골랐던 게 떠올랐다. 어쩌면 진짜 쉬고 싶어서 골랐을 수도 있겠다. 팬더가 먹고 자고 하는 시간이 길어서 부러워서 그랬나 싶기도 하고 쿵푸팬더3의 팬더처럼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프고 난 이후,
지난번에는 건강의 의미를 깨닫았다면
이번 아픔은
휴식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함이 아닐까.
제대로 쉰다는 건
뭔가를 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마흔살자아탐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