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노트

즐거움

글 쓰려고 앉으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by 스타티스

"쌤~"

밤 10시 16분에 반가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다. 대학원 동기였다.

"퇴근 중에 전화했어요."

우리는 지난해 8월 졸업했다. 동기 선생님은 청소년상담센터에 입사했다. 요즘은 일이 많아서 퇴근이 늦다고 한다. 행정일도 하는데 다른 기타 업무도 하고, 상담도 일주일에 10~12 케이스를 한다고. 대단하다. 상담을 하고 싶어 하는 상담사였다.


일상의 버거움을 이야기하면서 현재 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할게 많아요?"

안 그런 분야가 있겠냐만은, 상담은 그렇다. 수련기간이 있다. 학회 자격증을 준비하려면 교육분석도 받아야 하고, 개인상담도 해야 하고, 그룹수비도 받아야 하고, 공개사례발표도 해야 하는 등등 뭔가 챙겨야 할 것이 많다.


오늘 저녁에도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그룹슈퍼비전을 받았다. 자신의 상담 사례 1개씩 가지고 3명이 모여서 슈퍼바이저에서 상담에 대한 슈퍼비전을 받는다. 한 사람당 한 시간씩이다. 슈퍼비전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내 상담에 대해서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이번 케이스도 그랬다. 보고서 작성 후 상담방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느낌이 왔다.


오늘 슈퍼바이저 교수님은 '한 개인이 삶을 왜 살아가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셨다. 내 내담자의 삶과 나의 삶을 떠올리게 되었다. 오늘 통화한 동기에게도 이야기해 주었다.


할게 많은데도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어떤 걸 할 때 즐거운가?'


동기쌤이 그런다. "쌤은 지금 바빠도 즐거운 거 같은데요?"

그렇긴 했다. 그런데 어제 심학원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되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행인데 그 즐거움을 억누르고 살고 있구나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여행프로그램을 챙겨본다. '아주 사적인 동남아', '부산촌놈 in 시드니', '텐트 밖은 유럽',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잠깐 틈만 생겨도 여행프로그램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나에게 각인되어있는 '시간구조화' 때문이었다. 교류분석에서 나오는 개념이다.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것이 편하다. 그리고 지금 일정을 미루거나 취소하고 여행을 가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상담은 내담자와 약속이기도 하다. 내일처럼 내담자가 먼저 취소하면 반갑다. 지금 몸 컨디션이 버거웠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담자는 자유로움을 원했다. 지금 빡빡한 일정 안에서 너무나도 힘들어했다. 나는 촘촘한 스케줄 안에서 심리적 평안을 느낀다. 딱 이 부분을 슈퍼바이저 교수님이 설명해 주셨다. 사람마다 이렇게 다르다.


덕분에 동기쌤하고도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통화가 40분이 넘어서 종료되었다. 글쓰기 하는 시간이 덕분에 예상시간보다 40분이 미루어졌다.


그래도 친한 사람도 연결, 친밀감을 느껴서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에게 요즘 최대 즐거움은 이 부분이다.

마음을 나누는 이들과 통화, 연결감, 친밀감을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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