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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습작노트

외상후 성장

PTG(posttraumatic growth)

by 스타티스

화요일마다 상담센터에 출근을 한다. 운전해서 1시간 거리이다. 내가 사는 경남 소도시에서 부산의 도심부로 이동하기에 풍경이 그다지 예쁜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구간이 딱 2군데가 있다. 광안대교를 지날 때 바다가 보이는 풍경과 비탈길에 꽃들이 피어있는 구간이다.


조경학과 재학생 시절 수업시간에 그런 구간을 '씨딩지'라고 한다. 검색해도 정확한 용어가 안 보이는데, 아마도 조경공사 현장에서 쓰이는 용어라서 그런 걸까. 추측하기로는 '씨뿌림(seeding)+ 지역'으로 보인다. 원래 산이 있는 지역인데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 중간을 댕강 자른다. 그런 구간은 경사도가 심하다. 나무가 도저히 자랄 수 없는 구간이다. 그런 곳에 여리여리한 초화류들이 자랄 수 있게 시공을 한다. 진흙에 꽃양귀비, 수레국화 등 씨들은 버무려서 비탈이 심한 벽면에 뿌리는 것이다. 그러면 씨앗을 담은 이 흙들이 비탈면에 고이 자리 잡고 있다가 봄이 되면 싹을 틔우고 지금처럼 5월 즈음되면 꽃들이 활짝 핀다.


꽃양귀비의 빨간 매혹, 수레국화 보랏빛 아름다움, 금계국의 노오란 꽃이 보이는 이가 기분 좋게 만든다.


누구도 살 수 없어 보이는 경사 심한 비탈면에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PTG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그 씨딩지가 떠올랐다.

가만히 있던 산 입장에서는 중간에 사람들이 자신의 허리를 뚫을 줄 알았겠는가?

그리고 그런 곳에서 또 식물이 자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 곳에서도 꽃이 피어난다.

자신의 시련을 딛고 새로운 꽃을 피워내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PTSD(외상후 스트레스)를 겪은 사람, 즉 큰 마음에 상처를 입고 힘들었던 사람도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PTG(외상후 성장)이었다.


지난 한 주 동안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마음챙김 기술'이라는 책을 읽었다. 트라우마와 PTSD 너무 외상후 성장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 내용 중 '자기 자비'라는 단어가 와닿았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우리가 스스로에게 친구가 되어줄 수 있게 격려하는 걸 말했다.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한 판단 없이 나의 모든 경험을 돌보고 열린 마음으로 나 자신과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책 중 예시로 나온 자기 자비 위로의 말이 있다.

"네가 이렇게 느끼는 것이 안타까워.
나는 네가 더 나아지도록 너를 돌보고 싶어."

내가 나에게 해주는 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시련을 만나고 쓰러진다.

어떤 이들은 시련 후에 여러 가지 변화를 경험한다.

나처럼 쓰러지고 힘들어하다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희망을 얻었다.

지난 세월 힘든 순간이 있었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고, 이 순간의 소중함을 알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던 그 시절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나를 토닥이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운전 중에 사진을 찍지 못한다.

그래서 그 예쁜 풍경을 글과 함께 담지 못해 아쉽다.

운전석이 아니라 보조석에 타고 지나갈 일이 있으면 사진을 찍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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