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았다 2탄
"쌤, 진짜 괜찮은 줄 알았어요. 나 같으면 진짜 놀라고 힘들었을텐데....'
오늘 오전 집단상담(9-12시)이 끝나고 대학원 동기 선생님과 통화하며 들은 말이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동기쌤한테도 똑같은 피드백을 들었었다. 1년 전이었다. 두 선생님 다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 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강렬한 기억이었다. 내가 억울했다는 걸 누구라도 느끼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선생님들은 모두 알았다. 그때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진짜 나는 괜찮은 줄 알았다.
차라리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한거였더라면 나았다.
최소한 내가 어떤 상태인지는 알았을테니까.
그런데 왜 나는 그때 내가 괜찮다고 착각했을까.
오늘 집단상담에서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았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어'만'했었다.
지금 모습만 본다면, 사람들은 나의 과거가 어땠을지 모를 것이다. 아니 일부만 보고 판단'질'을 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그들에게 구구절절하게 내 이야기를 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내 모습이 그들 내면의 어떤 어두운 면의 투사 대상이 된다는 것도 안다. 그 투사 대상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어떤 부분은 보이지 않으려고 했었다. 온전히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드러내는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굳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내 가까운 사람들과 '친밀'한 시간을 함께 쌓아가면 삶이 충분히 풍성해진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 내가 바라는 걸 무엇일까 궁금해하고 있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왜 괜찮은 사람이어야만 했을까.
그래야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였다. 내가 감정을 느끼지 않아야 살 수 있었다. 사실 논문심사 자리에서 온전히 받아야했던 '교수님의 화'는 내가 과거 경험했던 기억들에 비하면 '별거'아니라고 그 순간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도 겪었는데, 그게 뭐라고.' 이렇게 그 당시에 넘겼던거 같다. 그런데 아니었다. 별 일이었다. 1년 넘어서 그 감정들이 올라오니 말이다. 그러면 교수님의 화를 별거 아니게 만들었던 그 과거 기억들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숙제가 남았다.
교수님의 '화'는 1년이 지나도 그대로 내 몸 속에 살아있었는데,
묵은 기억들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이 두 개는 분리해야 하는 것이 맞나.
아무튼 이 영역이었던거 같다. 진학교민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말이다.
어제 지원하고 싶은 대학교에 다녀왔다. 컨택할 교수님 연구실 문 앞까지 다녀왔다. 지원하고 합격한다면, 다녀야할 학교 교정도 거닐고 학교식당밥도 먹고 왔다.
학부 대학교, 편입 후 다닌 학교, 석사 때 다닌 학교, 현재 학생상담센터 근무하는 학교
네 개 학교 시설 비교가 주욱 되고, 장단점이 머릿 속으로 슥 지나갔다.
그건 눈에 보이는 영역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중에 핵심문제가 있었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있어서였다.
슈퍼바이저 선생님들은 그러신다. "그 감정을 충분히 만나주면, 그 다음에 다른게 올라와요."
오늘 집단상담에서는 과거 내 어린아이를 충분히 만나주면 욕구가 올라온다고 했다. 실제 집단원 중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분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보였다. 나를 충분히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상태로 진학을 결정할 순 없었다.
막연하게 내 모습을 알아채고 있었나보다.
그래도 하나씩 변화를 선택하고 있다.
"쌤, 미래에 쌤 모습이 궁금해요."
친한 언니는 자기 아들보다 내 10년 뒤가 더 궁금하다고 했다.
심학원 학장님도 '00님의 미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합니다'고 하셨다.
사실 부담스러웠다. 내가 뭔가 해야만하는 것인가 싶었다. 오늘 이 마음을 동기에게 말하니 그런다.
"아니예요. 쌤, 쌤이 더 편안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거예요."
이 말을 들으니, 불안한 마음이 쑥 내려갔다.
좋은 상담자가 되어야 하는 것도,
강의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도,
그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온전히 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예전에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묻는다. 그리고 그들의 답을 듣는다. 그래서 더 편안해지고 있다.
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찾은 단어 중 하나는 '솔직한 자기 개방'이었다.
오늘 나에게 1시간을 내어준 그 동기 선생님을 붙잡고,
1년전 괜찮지 않았던 나를 소개해주었다. 이제 이 아이를 돌봐야겠다고 말했다.
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조금씩 변화를 선택하고 있다.
또 한가지 박사과정 지원에 대해서도 말했다. 우리는 같은 학교, 같은 과, 같은 학번에 졸업도 같은 학기에 했다. 둘 다 한학기 밀렸다. 5학기 졸업했다. 그래서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공감받을 수 있었다.
그 선생님 나눈 대화중 찾은 건 '여유'였다.
다시 학교에 들어갔을 때, 그렇게 빡빡하게 살아야 하는 일정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 부분을 그냥 넘긴 것 같다. 그 선생님이 다시 이걸 짚어주니까 보인다.
학교에 들어가면 이렇게 오후 3시에 브런치에 글을 쓸 시간적 여유를 다시 잃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충분히 나를 돌보고 만나주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이걸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여 보려고 한다.
'항상 바쁘게 살아야만 해.' 이렇게 생각했던 나를 잠시 놓아주려고 한다.
(내 동기는 지금도 충분히 바쁜거 아니냐며 반문하긴 했다.)
나는 지금 정도의 여유라도 참 좋다고 느끼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놓는다면 나를 완전히 놓아버릴 것 같은 불안이 아직 있다.
*당분간은 나 자신과 대화하는 일기형식의 글이 계속될 듯하다.
*오늘 저녁에도 공개사례발표가 있다. 지난주는 엄청 떨렸고, 불안과 공포(?)가 있었는데,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평안하다. 지난주 일기를 쓰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봐서였을까. 아니면 내 주변에 나를 지지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어서일까.
*지난주 사례발표회에서 슈퍼바이저 선생님께서, "오늘의 경험이 선생님의 좋은 경험 중 하나로 저장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해주셨다. 그때의 따스함이 남아있다. 어쩌면 이 따스함은 내 주변에 계속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