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보다가 눈물
평가에서 따뜻함으로
공개사례발표회가 끝났다. 발표자로 참여했다. 마지막에 두 분 슈퍼바이저 선생님의 눈빛이 느껴졌다. zoom을 통한 비대면 만남이었어도 그랬다.
중요한 말을 하기 전에는 준비가 되어있는지 확인하기
"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어요. 초심상담자에게 부담이 되는 말일 수도 있는데,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말씀을 하시려나 궁금했다. 내가 어떤 준비가 되어야 하는 거였을까?
예전에는 있는 그대로 '나'가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었다. 지금은 있는 그대로 '나'도 괜찮다고 수용하는 과정 중이다. 어떤 말을 하시려나.
그리고 시작하셨다.
"나도 궁금했어요.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상담장면에서 가해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몇 해 전이었어요. 브라질에서 온 흑인 수녀님이었어요. 내담자와 한편이 되어서 대해야 하나. 상담자의 가슴에 공간을 만들어서 내담자를 힘들게 했던 그 가해자를 이 공간에 넣어두래요.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요?' 하는 마음이 올라왔더랬어요.
그다음에는 그 가해자에게 그냥 사랑을 보내라.
그리고 그 가해자가 스스로 달라질 수 있는 경험을 가지도록 시간을 주래요.
누가 사랑하겠어요? 그 사람을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니까 만나잖아요.
상담자가 그냥 멀리서 그 사랑을 보내주는 거죠. 그리고 그러한 시선으로 내담자를 바라보는 거죠.
내담자에게 상처를 줬던 그 사람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는 거죠. 제 말이 어떻게 들리시나요?"
이 말을 듣는데 눈물이 왈칵 났다.
상담장면에서 상담자가 어떤 마음 이어야 할지
앞으로 내가 상담자로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슈퍼비전이었다.
그리고 덧붙어주셨다. 이 말이 부담으로 다가오는지 확인하셨다.
부담이라기보다는 빛이 보이는 느낌이라고 말씀드렸다.
슈퍼바이저 선생님은 상담에 오래 머물지 않은 선생님한테 이 말을 하게 되어 부담을 주나 생각에 미안하기도 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또 한 분이 떠올랐다. 올해 초에 만난 슈퍼바이저 선생님이자 5회기 교육분석 교수님이다.
'먼저 알게 된 사람이 해야지. 어쩔 수 없지.'라고 말씀하시며 삶의 무게를 말씀하셨다. 그때도 교수님도 나도 눈물이 왈칵 나서 함께 울었던 기억이 난다.
왜 울었을까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모호함보다는 명확해진 무언가가 안심이 되기도 하고.
그 교수님 말씀처럼 무겁기도 했던 거 같다.
그나저나 그 교수님은 내 보고서만 읽고, 어떻게 다섯 단어를 찾아내셨을까.
침착함, 고요함, 창조성, 명료함, 호기심
이 단어들을 듣는데,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나보고 찾아라 해도 힘들었을 거 같다. 어쩌면 조금 멀리 떨어진 타인이 나를 더 명확하게 볼 수도 있겠다 싶다.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이걸 볼 수 있게 해야 하는 걸까.
여러 가지 신비한 경험을 한 시간이었다.
덕분에 트라우마 경험은 조금은 덜 뾰죡하게 바뀌었을까.
오늘 M교수님의 논문을 몇 편 읽었다.
논문을 보다가 눈물이 왈칵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간 양적논문만 읽고 썼던 나는 이 논문들이 신기했다.
자신을 이렇게도 솔직하게 세상에 드러내도 되는 걸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하긴 이렇게 브런치에 매일 솔직한 글을 쓰는데....
그 논문들을 읽기 전까지는
이런 글들도 논문의 글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거였다.
나의 과거 경험들도 논문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거였다.
그 교수님 논문처럼.
'이렇게 논문을 써도 될까?' 싶었는데,
나처럼 논문을 읽다가 우는 독자가 생길 수도 있는 거였다.
공부도
상담도
둘 다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최소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는 알 것 같다.
어제와 오늘에 대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