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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Jun 15. 2023

포근함

과거 self를 데리고 나오는 경험

사진출처 : 픽사베이


상담수련 마지막 시간이었다. 올해 3월에는 상담수련센터 세 군데에서 수련 중이었다. 4월에 한 곳에 수련이 끝나고, 6월 두 번째 상담센터 수련이 끝났다. 한 곳은 1년 계약이므로, 내년 2월까지 수련이 진행된다.


그동안 정신없이 살았다. 3군데 할 당시에는 밤 12시까지 정신없었던 거 같았고, (당시 무슨 정신으로 다른 수업도 들었다.) 한 군데 끝나니까 숨이 쉬어졌으며, 오늘은 편안함이 몰려왔다. 약간의 성취감도 느꼈다. 완벽주의 자기 제시를 변인으로 논문을 썼던 나로서는 끝난 직후에 성취감을 느끼는 건 큰 변화였다.


이러한 변화의 기본이 되는 건 연대감이다.

이번 수련은 조원들이 참 좋았다. 처음에는 모두 경계를 세우고 탐색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한 주 한 주 시간이 흐르면서 끈끈해졌다. 마지막이 되니까 아쉬운 마음이 올라왔다. 한 선생님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풀세트로 주셨다. 자신의 성향상 이렇게 인생 이야기를 다 꺼내놓는 건 큰 마음을 먹은 것이라고도 설명해 주셨다. 또 한 가지는 내담자의 말이 9, 나의 말이 1이 되게끔 상담을 하라고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많이 배우고 있다. 이제 한 템포 쉬어야 할 타임이라는 것도 느껴진다.


이곳 수련은 상담자 - 내담자를 번갈아 가면서 경험하게끔 한다. 오늘 나는 첫 타임 상담자로 20분, 마지막 타임 내담자로 20분을 경험했다. 오늘 상담은 나와 접촉이 실패해서, 그 부분을 피드백받았다. 몇 달 동안 나를 지켜본 분들이라 따뜻하고 예리했다. 하이라이트는 나의 내담자 경험이었다. 이번 수련을 하면서 논문 심차 2차 때 경험이 트라우마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 낮에는 1년 동안 펼쳐보지 못했던 내 논문을 꺼내서 읽게 되었다. (포스터 전시 때문인 이유가 가장 컸지만) 그전에는 가까이하기도 힘들었다. 졸업을 인정하기도 쉽지 않았는데, 그 중심에 그때 트라우마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상담자로 시연해 주신 선생님은 개인상담 4년 차이시고, 이곳 수련을 몇 번째 받는 분이셨다. 내공이 달랐다. 심상작업을 해주셨는데, 과거 심사받는 장면으로 들어가서, 그때 나와 만나게 해 주었다.

한 단계 한 단계 작업하면서 내 몸 상태가 어떤지 꼼꼼히 체크하게 해 주셨고, 과거의 나와 만나서 해주고 싶은 말을 하게끔 해주셨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알아차리곤 놀랐다.

따뜻하게 꼭 안아달라는 말이 쑥 올라왔다.


논문심사 2차 그때 장면의 나는 얼어 있었다. 하지만 동기들에게 같이 있던 교수님들께 얼어붙은 나를 들키지 않으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아니었다. 얼마나 철저하게 나를 속였으면, 나조차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1년이 지나서야 그때 힘든 나를 돌봐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라도 알아봐 줘서 고맙다는 말도 올라왔다.


그 만남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그때 '나'를 지금의 편안한 장소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내 옆자리라고 하니, 여기로 초대해서 쉴 수 있게 해 주라고 했다. 충분히 쉴 수 있게 하고 다시 '과거의 나'를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그 후에는 내 따뜻한 심장으로 쑥 넣어보라고 했다.


우리 모두가 수련생이었다. 교수님께 받는 교육분석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오늘 동료상담을 통해서 과거의 '나'를 만났고, 상처를 치유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이곳 수련의 특징이었다. 동료 슈퍼비전, 동료 상담을 배웠다.


이번 학기 수련 마지막 타임이었는데, 나를 온전히 만나고 왔다.


마지막으로 그분이 나에게 해준 말씀은 그랬다. 잠들기 전 편안한 시간에 그 친구와 만나주라고 말이다. 아마도 본인이 경험하셨던 어떤 무언가 따뜻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분의 삶의 스토리를 다 듣지 못했지만 우여곡절을 지나서 지금은 평안한 상태로 진입하신 느낌이었다. 삶의 연륜과 그 편안함이 전해졌다.


선생님들께 사진 한 장을 요청했다. 한 학기 내내 줌에서 수련이 이루어져서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사람 대 사람, 상담자 대 상담자로 온전히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마무리 소감도 개인의 성장, 전문가로 성장을 나누어 발표하게 하셔서 한 학기를 처음부터 필름 돌리듯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내담자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우리 자신입니다."


또 하나의 마침표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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