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처럼 줄줄이 엮여있는 마음속 어려움들
금요일 오전 10-12시, 학생상담센터 수련일이다. 현재 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례를 수련생 한 명씩 발표를 한다. 2주 전에는 내 차례였고, 이번에는 다음 수련생 차례였다.
어제저녁 수련(저녁 7-10시 30분) 시간 동안 했던 내담자 경험이 몸에 꽤 무리가 갔었나 보다. 아니면 수요일에 있었던 갑작스러운 일정변동에 쌓인 피곤이 아직도 몸에서 떠나지 못했던 것일까.
오늘 사례발표회에서 또 울게 되었다. 내담자의 내적 세상에서 외로움이 느껴졌다. 과거 내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첫 교육분석 당시에 난 말이 많이 했다. 쌓인 말들을 꺼내놓아야 살 거 같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말들이 추상적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이후로 직관형(iNtuition), 감각(Sensing)을 알게 되면서 나의 성향이려니 생각했다. 오늘 또 한 가지 알게 되었다.
내담자는 감정접촉이 어려워했다. 문제 해결중심에 초접이 맞춰져 있었다. 마음속에 답이 정해져 있지만,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지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타인을 믿지는 못한다. 어릴 때 여러 가지 이유로 믿을 만한 어른이 곁에 없었다.
내담자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추상화해서 안고 있었다. 자신의 경험이 재해석 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추상화하는 거였다.
내담자가 감정을 느낄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었다.
우선 내담자의 말을 잘 들어야 했다.
내담자가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부분을 잘 찾아서 반영해주어야 한다.
내담자는 이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2차 감정인 수치심으로 넘어가기 전에 감정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작업이 필요했던 거였다.
내담자의 고통은 '느낌'의 문제였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는 '느낌은 사실이 아니다.'였다.
그 문장을 만난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자 있는 '느낌'이었지, 실제로 혼자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오늘 내담자는 배신하지 않을 안전한 대상과 결합했었다.
학문, 예술 등등
나의 경우에는 공부였고, 식물이었다. 글쓰기였다.
오늘 슈퍼바이저 선생님은 예전에 봤던 어떤 장면을 예시로 들었다. 김제동과 다른 선생님(성함이 기억이 안 남) 대화였는데, 김제동이 어떤 인형을 샀다고 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반응이 그랬다고 한다.
"제발 살아 있는 것과 결합하세요."
그 선생님의 기억을 내가 전해 들은 내용이라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요점은 그거였다. 사람은 사람과 소통하며 지내야 했다.
배신하지 않을 안전한 대상을 죽은 것들에서 찾으면 안심은 느낄 수 있지만 치유로 나아가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오늘 슈퍼비전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 지지난주도 울고, 지난주도 울고, 어제도 울고, 오늘도 울었다.
내담자 마음속에 철저하게 혼자인 세상이 전해졌다.
내담자는 무섭고 두렵고 아무도 믿을 수 없어서 불안한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사는 세상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알아차리게끔 반영해주어야 하는 거였다.
떠올려보면 나의 첫 번째 교육분석 선생님이 그러셨던 거 같다.
그 많은 이야기를 듣고, 풀어내고, 나로 하여금 알아차리게 해 주셨다.
지금은 마음속 어딘가에 항상 든든하게 자리 잡고 계신다.
더 이상 교육분석을 받지는 않지만.
나의 내담자들에게도 그렇게 버텨줄 수 있는 든든한 상담자로 역할을 해야 하는 거였다.
*나의 내담자 얼굴 한 명 한 명이 영화처럼 지나갔다. 앞으로 10년은 배우는 사람으로 생각하며 살야지.
그리고 이제는 좀 쉬어야 할 때가 온거 같다. 이제는 이 세상이 전쟁터라 아니라는 걸, 이젠 알았으니 말이다.
마음 속 잠긴 방들,
숨겨진 방들을
하나씩 만나가며
내담자기이고 하고
상담자기이고 하며
나를 만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