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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습작노트

글을 쓰는 이유

알아차림

by 스타티스

Pixabay로부터 입수된 yaaaaahiko님의 이미지입니다.


수국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도심 한가운데서도, 아파트 화단에서도, 관광지에서도 수국을 만난다. 일 년 중 이때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달력 안에서 날짜를 만나는 것보다 자연에서 계절을 만나면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에겐 생각과 감정이 수국과 비슷하다. 오늘 내가 든 생각, 만난 느낌을 기록한다. 일생 중 오늘 지금 이 순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흘려보낼 수도 있지만 기록해 두면 미래의 '나'와 지금의 '나'가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간혹 과거 글을 읽으면 그때 그 순간의 나와 만난다.


나에겐 미술관도 그렇다. 이십 대 초반에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 있다. 작품을 보면 한 사람을 느낀다. 그때 그 순간에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담는다. 글도 그림도 음악도 표현방법은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이 있을 것이다. 나는 미술은 보는 걸 좋아하고, 음악은 듣는 걸 좋아하는데, 글을 읽고 쓰는 둘 다 좋다. 접근성이 좋기도 하지만 나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도 혼자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가수가 노래를 혼자 부르더라도 녹음하는 이 등등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오케스트라 경우는 더 그럴 것이다. 미술은 나에게 그 분야 표현능력이 떨어져서 아쉽다. 그래서 보는 게 좋다.


글은 지금 이 순간 만난 '나'를 바로 기록할 수 있어 좋다. 지금도 그랬다. 오늘 아침 일어나서 여러 가지 글감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제 본 영화 '엘리멘탈', 아침에 읽은 책 '관계를 읽는 시간', 새벽에 일찍 일어나 본 드라마 '킹더랜드' 등 결국에는 또 '나'에 대해서 적고 있다. 충분히 나를 돌봐주면 그다음에는 시선이 바깥으로 향할 날도 오겠지.


아직은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 적는다.

나를 만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적는다.


오늘 아침에도 논문 포스터 작업을 하려 앉았다가, 너무 하기 싫어서 책을 읽어버렸다. 오후 상담이 있어서 이제는 이동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 또한 알아차림이다. '내가 신청해 놓고, 이렇게 하기 싫어하는구나.'하고 말이다.


이번 달에도 글루틴과 함께 나를 알아차리는 순간을 기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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