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 '업'을 보고 난 후

by 스타티스

아내가 죽은 후,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던 할아버지가 다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영화 '엘리멘탈'을 보러 갔다가 처음부터 엉엉 울어버렸다. 알고 보니까 '업'의 주인공들이었다. 엘리멘탈 감독이 '업'의 목소리 연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디즈니채널을 가입해서 '업'을 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으면 사람은 세 가지로 반응한다. 일단 상황에 잘 대처하는 반응이 있을 수 있겠지. 그다음 두 가지가 문제다. 얼어붙거나 더 과하게 행동하거나.


'업'의 주인공 할아버지 '칼'은 아내가 먼저 떠나고 세상에 혼자 남은 후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세상에 과민대응을 하며 살았다. 아내와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집 주변으로 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수시로 집을 팔아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주변에 공사소음 등 칼의 입장에서는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거다. 어느 날 공사현장사람이 칼의 우편함을 망가뜨리게 되고 그에 대한 대응을 하다가 그 사람을 치게 된다.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을 것이다. 상대방 또한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살면서 어떠한 일은 일어난다.


칼은 어쩌다 아이 러셀과 여행하게 되면서부터 더 이상 피하지 않고, 과민대응하지 않고 상황에 맞는 대응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외로움을 느끼던 칼이 러셀 덕분에 연대감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칼은 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되었다. 아내인 엘리의 배지도 러셀에게 주게 된다.


칼은 노인복지센터에 들어가기 싫어서 집과 함께 떠나버렸다. 그 이후에 겪게 되는 일들이 그를 변화하게 한다. 이후에는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이 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알맞은 대응을 하며 살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친밀감과 연대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요즘 트라우마에 관련한 책들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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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예스24




트라우마와 몸에서는 일반적 방어반응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 번째 방어체계는 주변에 직접 도움을 청하는 방어(애착관계체계, 사회적 연결 체계)이고

두 번째 방어체계는 몸을 움직이는 동적 방어(투쟁, 도피)이며

세 번째 방어체계는 부종적이고 순종적으로 행동하는 부동적 방어(얼어붙기, 무너지기, 죽은 체 하기)다.(141쪽)


동물들은 탈출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도망치지 못하고 얼어붙는 경우가 더 많은데 그 이유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발각되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섣부르게 움직이다가 포식자에게 발각될 경우에는 더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생존의 마지막 수단은 '죽은 척하기'라고 한다. 동물들은 움직이지 않거나 움직일 수 없는 동물은 병에 걸렸을 수도 있으므로 먹지 않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고 한다.


왜 그 상황을 도망치지 않고 얼어붙는지 궁금했었다. 그 모든 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모든 방어반응은 상황에 따라 위협을 줄이는데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이러한 방어방식 중 하나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방식을 일상에서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세계에서 얼어붙기는 교감신경의 항진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147쪽)

즉, 근육이 긴장되어 뻣뻣해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감각기관이 예민해지면서 과각성된다.

이러한 얼어붙기는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 언제든 도망갈 수 있게 준비하고 있는 유형과 무서워서 움직일 수도 없고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마비느낌이 드는 유형이 있다.


이 모든 방어가 실패로 돌아가면 '죽은 척 하기', 전적인 굴불 유형으로 가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근육은 늘어지고 눈은 풀리고 심장박동이 느려진다. 개인은 통각상실증이 발생해서 상처 때문에 생기는 통증을 감지하지 못한다.(149쪽). 바로 이것 때문에 많은 내담자들이 학대받는 동안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고 보고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았을 만한 상황, 누가 봐도 아플만한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고 괜찮다는 것은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영화 '업'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주인공 칼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주변에 공사를 하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집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때는 자신의 상황,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 걸로 보였다. 그러다 경찰서에 갔다 와서 뭔가 대항해야 하는 상황에 생겼을 때, 사랑하는 아내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떠난다. 아내와 추억이 담겨있는 집을 통째로 들고 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과잉대응으로 느껴졌다. 이후 러셀을 만나고, 여러 가지 상황을 겪으면서 자신의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부인과 추억이 담긴 배지를 러셀에게 넘겨주고, 집도 포기한다. 정상반응 패턴을 보이는 것으로 추측된다.


칼 할아버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힘든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영화 덕분에 트라우마 관련 몸의 반응 공부를 사례를 접하면서 배운 기분이다.


앞으로는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책 속 이론 이야기를 찾아볼까 하는 마음도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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