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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습작노트

무사히 끝났다.

하고 싶음과 하기 싫음 그 사이 어딘가

by 스타티스

사진출처 : @munkyo.seo (인스타그램)


"선생님, 오늘 수업 오시면 전화 주실 수 있을까요?"

담당 선생님이셨다. 한 학기 감사하다고 선물을 주셨다. 가벼운 우산, 비타민 C 한 통, 마시는 비타민제. 얼마나 반가운지. 지난번에 화났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고작 이 선물에 마음이 바뀐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중간에 수업평가가 있는데 연말로 미루어졌다고 한다. 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이 편해졌고, 나의 무가치함 어딘가를 건드리지 않아서 안전하게 느껴졌던 거 같다. 또한 동료 선생님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와 같은 4,5교시에 들어가는 선생님은 4명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세 분인데, 두 분과는 따로 대화를 나눈 적 있다. 한분은 오티 때 뵙고 한 학기 마지막에 뵈었다. 한 학기 서로 수고했다고 나누었다. 작년에도 했던 분인데 그때는 수업 들어가기 10분 전즈음 모두 모여서 커피도 한 잔 하고 대화도 나누었다고 한다.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각자 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 부분이었나 보다. 강사일은 그렇다. 각자 하는 일이라, 유대감이 필요하다.


어쩌다 1년 치 수업을 맡아서 부담이 컸다. 어딘가 의지하고 나눌 누군가가 있었으면 했는데, 오롯이 혼자였다. 수업을 연계해 준 선생님이 있었지만, 뭔가 나는 내가 진행해보고 싶었다. 이건 어떤 마음인가. 하여튼 3월부터 지금까지 12차시 수업이 끝났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표를 찍었다. 2학기에 시작하니까 쉼표일까. 하여튼 이제 5주 뒤에 2학기 수업이 시작되니 숨통이 틔인다.


평소 수강생이 16명인데, 오늘은 여러 가지 대회 준비로 다섯 분만 참여했다. 이것도 좋았다. 나는 활동을 하고 마음 나누기를 하는 집단상담 형식의 수업을 선호한다. 오늘은 충분히 나누어도 괜찮을 시간이 되었다.


한 분이 그랬다.

"선생님 다음 학기에도 하시나요?"

"네."

"한 가지 제안드려도 될까요?"

"네, 아이디어 있으시면 주세요."

"영화를 활용한 수업 해주시면 어때요?"


마침 UP과 엘리멘탈을 보고 구상하는 어떤 것이 있었다. 그 부분을 딱 짚어주셨다. 요약본을 볼까. 영화를 볼까 싶었는데, 영화를 보고 싶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마침 그분들이 디자인학과 시기도 해서 준비해 보겠다고 답변드렸다. 큰 틀은 있지만, 어떤 걸 담느냐는 나의 선택이었다.


다섯 분이 한 분씩 돌아가면서 한 학기 후기를 나누었다.

"재미있었어요."

"나의 감정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수업 시간에 나의 감정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아요. 나를 만나는 기분이었어요."

"선생님께서 간식을 준비해 주셔서, 수업 올 때마다 간식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심리검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았아요. 보통 인터넷으로 MBTI를 많이 하는데, 강점검사와 스트레스 검사 할 수 있어서 나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우리가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수업시간에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한 학기를 진행하면서 '나는 강사와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느끼고 있었다. 2학기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래도 마침표는 찍자는 마음에 11월까지 한번 해보자 마음을 먹고 어떻게 버틸까 하고 있었다.


오늘 수강생들의 말은 나에게 보약이 되었다.


'아, 방학 동안 진짜 준비를 잘해보자.' 마음먹게 되었다.


어제 학회포스터 작업 한 후 교수님께 피드백받고 좌절하고 있었다.

다음 주 발표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책을 다 읽지 못해서 좌절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상담을 할 수 있는 상담자인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책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어제 종료한 내담자도 피드백에서, 나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오늘 수강생들도 수업에서 각자 느낀 부분을 겹침 없이 오롯이 표현해 주어서 감사했다.


2023년 상반기,

그렇게 나쁘게 살진 않았구나.

아니 열심히 살았구나.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날이다.


수업 마치고 와서, 슈퍼비전 준비 보고서를 쓰고 나니 열 시가 훌쩍 넘었다.

정말 하루하루 애쓰며 살고 있구나.

토닥토닥.




어제 교수님 메일을 읽고 학회 포스터참여를 그만두고 싶었더랬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었더랬다.

석사 졸업 논문 내내 그런 마음이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의 무가치함과 수치심을 함께 버무린 비빔밥을 먹는 느낌이었었더랬다.

이제는 그랬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지금 내가 스스로의 무가치함을 느끼고 있어서 힘들다는 것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러니

학회 발표까지 조금만 더 힘내보자.

나에게는 교수님의 피드백 내용을 수정할 용기와 힘이 있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자.

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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