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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Jul 17. 2023

아이스크림 블록

꿈에 대하여

2023. 7. 17 월


지금은 배스킨라빈스 31 매장에 거의 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릴 땐 지인들이 아이스크림 쿠폰을 자주 보내주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한 번에 다 먹지 못할 만큼 양이 많았다. 글라스락에 넣어서 다시 냉동실에 얼리곤 했다. 하루는 매장에 선물 받은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없었다. 직원분이 다른 제품도 선택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그때 아이스크림 블록을 알게 되었다. 냉동실에 그대로 넣어두었다가 원할 때 꺼내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장점이었다. 대신 다양한 맛을 고를 수는 없었다. 당시에는 세 가지 맛 정도 있었던 걸로 기억난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이후, 분홍빛 플라스틱 블록모양 통을 버리기엔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하나씩 씻어 말려서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둘째가 어린이집 다녔을 무렵에는 새벽에 자주 깼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블록을 갖고 놀기도 하고, 배고파하면 맨밥에 밥을 말어서 먹기도 했다. 그때 유용하게 쓰였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으면 분홍 블록이 하나 생기는 거였다. 몇 달이 지나자, 블록이 갖고 놀만큼 꽤 많아졌다. 시간과 경험(아이스크림 먹기)이 쌓이니, 놀이를 할 만큼 도구가 되었다.


요즘 내가 그렇다.

경험을 모으고 있다.


오늘 학회 포스터 발표 작업을 마쳤다. 저녁 9시 인쇄소에 넘겼다. 이제 당일에 지정된 곳에 포스터를 붙이면 된다.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든 걸 신청했을까 싶었다.


오늘 설거지를 하며, 글감을 생각하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나는 경험수집가였다. 다양한 경험을 수집하는 걸 좋아한다. 호기심도 많다. 그래서 전공이 여러 번 바뀌기도 했다. 이제 마지막 전공으로 정착하려고 마음먹었다. 전문성을 간절히 쌓고 싶었다. 무리해서 수업도 듣고, 다양한 경험에 나를 노출시키기도 한다.


그러면 도대체 왜?


주슈퍼바이저 선생님과 화요일마다 함께 근무하고 있다. 하루는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과 함께 점심밥을 먹다가 물으셨다. “00 선생님은 꿈이 뭔가요?”


당시에는 멍해졌다. 아마도 뭐라도 되겠죠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제야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상담자들이 자신의 역량껏, 자신의 스타일대로 마음껏 상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이고 싶다.


물론 나도 상담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상담하는 사람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화요일 대학교 상담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상담하는 일도 좋아하지만,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걸 말이다.


나에겐 ‘연대감’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 내 삶에서 현재 제1의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상담자들의 ‘연대감’을 위해서 뭔가 하고 싶다. 그 뭔가는 살아가면서 알게 되겠지.


화요일 선생님들과 함께 근무하지만 상담실에 들어가면 내담자와 나 오로지 둘 뿐이다. 함께 하지만 외로운 직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 연대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번에 학회 포스터 작업을 하면서 더 느끼게 되었다. 어디 물어볼 때가 없었다. 화요일 근무하러 가서 여러 분들에게 물었지만 경험이 없다고 했다. 대학원 동기에게 부탁해서 그 연구실 박사 선배님 연락처를 받아서 물어보았다. 그분의 조언을 듣고 1차 포스터작업을 마무리해서 교수님께 보냈다.


교수님은 하나씩 꼼꼼히 읽어보시고, 피드백을 주셨다. 석사는 한국에서 하셨지만, 박사는 미국에서 하고 오셨기에 한국과 미국의 포스터 발표 문화에 대해서도 조금 알려주셨다.


오늘은 포스터 인쇄하는 곳에 전화해서 부착방법을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내 주변에는 직접 포스터 발표를 하신 분은 없었다.

 

내가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이유는 바로 이 부분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을 때, 내가 아는 만큼 자세히 알려주고 싶다. 머리에 든 지식이든, 몸으로 습득한 지식이든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가 만난 내담자들은 자기 안에 있는 내면의 힘을 느끼고 일상을 단단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고,


내가 만난 동료 상담자들은 ‘연대감’을 느끼며 함께 해나간다는 마음을 느끼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뭔가(공간, 단체 등)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오늘 글감을 보니,

아이스크림 블록이 생각났고,

지금 내가 하는 경험 하나하나가 블록처럼 쌓여서

뭔가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에게 아이스크림 블록은

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려면,

비우기도 하고

씻기도 하고

시간을 투자해서 하나하나 모으고

쌓아가기도 해야 한다.


과거-현재를 차곡차곡 쌓아보자.

미래를 위해.




*이미지 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Andrey Cojocaru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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