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다시 보기
Pixabay로부터 입수된 Thomas님의 이미지입니다.
해야 할 일이 있지만, 오늘은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럴 때는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본다. 디즈니플러스를 열어서 소울을 틀었다. 심학원 과제를 하면서 보려고 했지만, 결국엔 소파에 앉아서 다시 진지하게 보았다. 처음 봤을 때, 두 번째 보았을 때, 오늘 느낌이 또 다르다. 아니, 내 눈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장면이 달라진다고 할까.
첫 번째 봤을 때는 맨 마지막 대사가 크게 들렸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즐겁게 살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삶의 한 단어는 present라고 하고 다니면서 나는 진정 선물처럼 오늘을 살고 있었나 싶었다. 그리고 다시 보게 되었을 때는 22번이 지구의 삶을 왜 두려워하는지가 크게 들렸다. 제대로 살 수 없을 거 같아서 무거운 건 아니었을까.
오늘은 그렇다. '그냥' 살아도 되는구나 싶다. 영화 속 이발사의 말처럼 우리는 꼭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되었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눈을 마주치며, 삶을 나눌 수 있는 삶이면 되는 거였다.
그랬다.
오늘 글루틴 엔딩모임이 있었다. 글루틴은 글쓰기 모임이다. 매일 글감이 주어진다. 자유주제로 써도 되고, 글감으로 써도 되어서 선택가능하다. 평일 밤 12시는 글루틴 글마감시간이다. 1월부터 참여한 이후로는 평일에 빠짐없이 글을 쓰고 있다. 주말은 빼고. 지난달부터 엔딩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글로는 몇 달을 뵌 분들이다. 엔딩모임은 zoom에서 진행되는데, 글로 만난 사이는 신기하게 어색함이 덜하다. 마치 원래 이야기 나누던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러간다.
엔딩모임을 마치고, 글을 쓰려는데 영화 소울 속 이발사의 대사가 생각났다.
꼭 무언가 되지 않아도 괜찮은 거였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감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으면 되는 거였다.
예전에 내가 사는 게 그리 무거웠던 건, 뭔가 되어야 한다는 무게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소울에 등장하는 22번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 힘들어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에서는 '단풍나무 잎'으로 표현된다.
단풍나무 꽃은 봄에 핀다. 여름 내내 영글에서 가을에 찬바람 불어오는 무렵에 가을 햇살을 받으며 떨어진다. 특성상 원 나무 근처에 많이 떨어진다. 큰 나무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어딘가에서 또 자라난다. 내가 본 단풍나무들 싹들은 그랬다. 모여서 옹기종기 자라났다. 마치 영화 속 이발관처럼, 오늘 글루틴의 엔딩대화처럼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글과 말로 옹기종기.
예전에는 이런 재미를 왜 모르고 살았을까. 삶의 즐거움을 기꺼이 누릴 준비가 되지 않아서였기 때문이었다. 삶의 무게감만 느끼고 있었기에.
오늘도 즐거움 한 스푼, 아니 두 스푼 먹었으니,
밤사이 쿨쿨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