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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Sep 20. 2023

슬픔을 선택하다

피하지 않고 온전히

2023.9.20 수


격주 화요일 저녁 8시부터 11시는 심학원 수업이 있다. zoom에서 만나고 한달에 한 번은 오프라인 수업이 있다. 매 시간 근황을 나누고, 수업이 진행된다. 처음에는 학장님의 질문이 어색했다. ’매일 만나지 않는 사람에게 나의 근황을 어떻게 말하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완전히 친밀하지 않은 사람에게 나의 어디까지 개방해서 말할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심학원 학우님들은 예전에 알던 사람들이 아니다. 문요한 학장님을 중심으로 마음 공부를 하기 위해서 모인 이들이다. 사는 지역도 다르고, 각자 하는 일도 다르다. 블로그에서 모집공고를 보고 수업을 신청해서 전화면접을 봐서 만나게 된 인연들이었다.


처음에는 어디까지 말해야할까? 고민이었다. 심학원의 교육과정은 ‘통합치유과정(5개월)’과 ‘심리 콘텐츠 창작과정(11개월)로 나뉘어있다. 지난 상반기 통합치유과정 3기를 거쳐서 현재는 창작과정 1기를 시작했다. 통합치유과정 수업을 듣는 동안 책을 휘몰아치면서 읽었다. 한달에 두꺼운 전공책 두권 이상 읽고, 과제를 했다. 다른 일도 바빠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간들이었다. 그 이후 삶의 속도감은 줄었고,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시속 100km로 달릴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20km로 속도를 줄이면 다른 풍경이 보이듯이 말이다.


지금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큰 일을 겪기도 했고, 교육분석을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교육분석 시간에 교수님은 삶의 본질을 이야기했다. 이론으로 배웠던 내용들이, 어렴풋이 짐작했던 내용들이 실제로 다가와서 나를 덮쳤다. 이후 깊은 슬픔을 경험하고 있다.


어제 수업에서 학장님께서 근황을 이야기하라고 하시길래 이렇게 답했다.

“사회적인 ‘나’는 역할을 잘 수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실재의 ‘나’는 슬픔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많이 울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나’는. 명랑한 편이다. (*명랑:  1)흐린 데 없고 밝고 환함, 2)유쾌하고 활발함) 오프라인 수업에서 5개월 동안 나를 보아왔던 동기들이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금요일에는 편도 3시간 반 거리, 왕복 7시간 거리 동기 상갓집에도 다녀온 걸 알기 때문이었다. 동기선생님의 남편분이 돌아가셨다. 그 분의 글 속에서 남편분에 대한 마음을 느낀 적이 있다. 얼마나 의지하고 사셨는지 느껴져서 운전해서 가는 동안 눈물이 났다. 이제서야 ‘한 사람이 나에게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나는 도대체 삶의 무엇을 이해하며 살았던 것일까. 저 한 문장에 담긴 의미도 이제야 마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삶을 머리로 살았었다.

그 시간들에 대한 내 감정은 슬픔이었다. 과거 나를 돌아면서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나는 조금 배웠다고 아는 척하며 다녔던 거다.부끄러웠다. 그리고 나에게 마음을 주었던 가까운 이들에게 미안했다. 그들은 나를 마음으로 대했는데, 난 머리로 답하며 살았었다. 그 시간들이 깊게 깊게 미안했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 못한 시간들이었다.


회환(*회환:정말 뭔가 뉘우치고 한탄하는 것)이라는 단어를 깊게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슬프고 또 슬펐다. 오늘은 강의를 가는 날이다. 1시부터 3시까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눈물이 났다. 무사히 강의를 진행한 사회적 나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예전에 나였다면 주말에 있을 필기 시험 준비를 했을 것이다.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힘들어서 다른 것으로 도피했을 것이다. 주로 공부로 도망쳤었다. 뭔가 열심히 집중하면 슬픔을 온전히 느끼지 않아도 됐다.


슬픔으로부터 도망치며 살아왔다.

글쓰기도, 공부도, 일도 나에게는 도피처였다. 이제는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슬픔을 선택했다.



한동안 글쓰기를 못하고 있었다.

과거 글들로 돌려막기를 했었다.

어제 심학원 수업을 들으며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기록하는 것도 용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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