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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Sep 22. 2023

시험에 대하여

시험과 결승점

고민이라고 했다. 책을 읽고 싶은데, 주변 사람들은 영어공부하고 자격증 공부를 한다고. 나도 그래야 할거 같다고. 그래서 물었다.


"영어 공부를 자격증 공부를 하는 이유가 뭔가요?"

"그래야 취업을 하니까요."

"삶의 결승점이 취업인가요?"


 내가 그랬다. 중고등학교 때 남들이 공부하니까 했다. 엄마가 학원가라고 하니까 갔다. 왜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힘들었다. 대학가서는 그나마 나았다. 전공 공부는 재미있었다. 설계는 그다지 맞지 않았지만 식물을 알아가는 건 새로웠다. 하지만 그때도 왜 하는지 몰랐다. 남들이 자격증 공부하길래 조경산업기사를 따고 또 조경기사를 따고, 토익공부를 했다. 그때 나는 왜 그걸 했을까.


 2학년 마치고 산업기사를 준비하고, 3학년 마치고 조경기사를 준비하느라 사람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방학 때는 토익학원을 다니느라, 여행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했다. 대학생 때 내 삶에서 즐거움의 영역은 없었다. 그래서 휴학을 했다.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은 내 이십 대를 살려준 경험이다. 취업하면 평생 재미없는 일만 하게 될 거 같아서 휴학하고 하고 싶은 걸 했다. 그때 살아있었다. 복학 후 다시 죽은 삶으로 돌아갔다. 심지어는 공무원 공부를 시작해서 핸드폰을 정지한 기간도 있었더랬다. 그때 내 삶에서 중요한 건 뭐였을까. 남들처럼 사는 것? 그렇게 취업을 하니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삶이 허무했다. 출근하면 일은 바쁘고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하고 욕도 좀 먹고 해야지 월급이 나왔다. 내가 삶의 즐거움을 모두 포기하면서 추구한 삶이 그거였을까. 그래서 퇴사했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말이다.


눈빛이 흔들리는 20대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00 씨의 삶의 결승점이 취업이라면 지금 자격증과 영어 점수가 제일 중요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우리 삶의 결승점이 눈을 감는 그날 이라면요? 무얼 선택하시겠어요?"


사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내일 시험을 친다. 작년에는 접수해 놓고 가지 않았던 그 시험이다. 과거 나는 공부하지 않은 시험은 치러 가지지 않았다. 실패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합격할 만한 시험에만 갔다. 그리고 그 합격을 위해서 일상을 갈아 넣어가며 열심히 공부했었다. 아이들과 눈 마주침을 포기하고, 지인들과 만남도 미루었다. 내 삶에서 그 시험들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얼마 전에 포트폴리오를 정리했다. 조경기사부터 사서자격증, 그리고 경력사항, 연수 목록 등등 뭐라도 열심히 살았나 싶었다. 상담공부를 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다. 이 영역에 오니까 또 많은 자격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꼭 따야 하는 걸까?' 

물론 자격을 갖추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조경산업기사는 조경기사를 따고 나면 무용지물이 된다. 청소년 상담사 3급을 따느라 몇 달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다. 면접에 연수까지 받았다. 내일 2급 시험을 치러 간다.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면 1급을 칠 생각이 있다. 과연 이 2급이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 삶의 결승점이 죽는 그 순간이라면, 오늘은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었다. 문요한 학장님의 '관계를 읽는 시간'을 읽었고, '공감 그 이상을 추구하며' 책을 읽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진심으로 소통되려면 무엇일 필요할까.

다른 책이지만 겹치는 부분이 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존중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를 진정 존중하게 되면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과거 나는 공부로 도피했었다. 눈앞에 어려움을 제대로 해결하기 버거웠다. 그리고 너무 힘들었다. 시험으로 공부로 도망갔다. 정신 차려보니 세월이 훌쩍 지나가있었다. 나는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 힘든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 자신도 잘 모른 채 말이다.


교수님과 교육분석을 하면서 그 실체를 만나게 되었다. 내 안에 진짜 '나'는 없었다. 진짜 내가 나의 주인으로 살았다면 시험에 합격하는 '나'만 가치 있다고 느끼지 않았겠지. 그래서 붙지 않을 시험에는 가지 않았던 거다. 시험에 붙고 성취하는 나만 가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모른다.

진짜 '나'로 존재하는 방법을 말이다.


이제야 해보려 한다.

넘어지고

깨지고

때로는 웃고

또 울기도 할 그 시간을

선택해보려고 한다.



내일 시험은 아는 만큼 열심히 치고 오려고 한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는 걸 시도해보려 한다.


내 인생 전체를 두고 봤을 때,

내일 시험은 치러 가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었다.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시험장에 가는 나를 느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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