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쓰신 글은 단독으로 논문에 실을 생각입니다. 소감문을 다시 정리해서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주까지만 하시면 됩니다. 바쁘실텐데 죄송하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월요일 밤 10시 30분경 카톡이 와있었다. 이미 짧은 소감문을 제출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부담감이 올라왔다. 잘써야지 싶었다. 토요일이 시험이라 마치고 보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후로 6일이 지났다. 아직도 소감문을 못 쓰고 있다. 처음 작성할 때는 10분도 안걸렸었다.
8월 말 ‘그림책을 활용한 죽음준비교육프로그램’ 관련 집단상담에 참여했다. 마침 심학원 오리엔테이션 날과 겹쳤다. 사실 심학원 오리엔테이션 날짜가 먼저였고, 집단상담 일정은 나중에 잡혔다. 리더선생님께 그 날은 피해달라고 말씀드렸었다. 하지만 10명 이상 인원이 모여야 하고, 논문 작성 일정 상 어쩔 수 없이 같은 날 하게 되었다. 잠시 고민했다. ‘빠질 경우 둘 중 어떤 것을 내가 감당하기 힘들겠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심학원 O.T를 빠질 경우,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적응하기까지 혼란을 겪을 내모습이 보였다. 나는 구조화가 중요한 사람이다. 첫단추를 잘 끼워야 마지막까지 안정적으로 간다. 그런 나에게 O.T를 빠진다는 건 불안감을 안고 시작하겠다는 의미였다. 죽음준비교육 집단상담에 빠지면? 심장이 쿵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친한 선생님이었다. 올해 1월 대가의 집단상담에서 만났던 분이다. 집단상담은 개인의 어려움을 두 명 이상의 모임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과거 아픈 경험에 대한 위로를 받기도 한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용기를 낼 힘을 얻었다면 더 좋다. 결국 가까운 사람과 관계를 선택했다. 내가 빠지면 인원이 부족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컸고, 프로그램이 궁금하기도 했었다.
집단상담의 목적은 참여자로 하여금 지금 이 순간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드는 거 였다. 처음에는 귀로 들려주었다. 죽음 관련 그림책 ‘나는 죽음이에요.’, ‘내가 함께 있을게’ 등을 읽어주었다. 죽음과 삶이 공존한다는 걸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촉각으로 느낄 수 있게 노인 분장을 체험했다. 분장을 마친 뒤 거울 속에서 40년 뒤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시각적 체험이었다. 데스크리닝 관련 내용은 마음 속에서 상상할 수 있게 하였다. 내가 죽은 뒤 그 다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앞으로 물건을 살 때 더 신중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단상담을 마친 뒤 이틀만에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아버님은 몇 년 전 암치료를 받으셨다. 하지만 퇴직 후 사회활동을 더 왕성하게 하셨다. 타지역 행사에 참여하셨다가 피곤하셔서 병원을 찾으신거였다. 링거를 맞다가 주무시듯 돌아가셨다. 심정지였다. 하시던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병원을 찾으셨다고 했다. 그 후 한달을 울면서 지냈다. 가족을 떠나보낸 애도의 시간이었다. 힘들어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참 애쓰며 살았었다. 뭔가 시작하면 잘하고 싶었다. 남들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생각이 내 몸을 휘감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래야 내가 가치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누군가 날 것의 모습을 알아볼까봐 불안했다. 들키면 끝이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누군가 교류가 힘들었던 이유였다. 뭔가 성취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느꼈다. 20대 이후 그토록 매달렸던 크고 작은 성취들은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나 자신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게 숨겨두었었다.
그 노력들이 성공했을까.
힘들기만 했다는 걸 깨달으면서 눈물이 났다. 나만 힘든게 아니었다. 내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했다. 특히 남편과 아이들에게 말이다. 남편은 개성이 강하긴 하지만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내 세계를 만들지 못했었다. 그러니 만날 수가 없었다. 연결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지금껏 내 삶에는 내가 있었는가?”
(관계를 읽는 시간, 문요한, 2017)
책 속에서 이 문장을 만나고는 엉엉 울어버렸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오디오북으로 듣고, 종이책을 사서 읽고 있다. 귀로는 만나지 못했던 문장이었다. 눈으로 만나니 마음 속 깊이 박혀버렸다. 이 부분이었다. 내 안에 내가 없는데 열심히만 살고 있었다. 사실 나는 잘 살고 싶었던거다.
‘죽음을 직면하는 것은 자질구레한
근심으로부터 보다
본질적인 삶의 유형으로 전환하도록 한다.’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 권석만, 2012)
중요한 걸 모르고 살고 있었다. 지난 한달동안 나를 관통한 생각들을 단어로 나열하면 이렇다.
“죽음준비교육→ 실질적 죽음 마주한 경험→ 존재에 대한 회의→ 내 삶의 의미”
아직도 과정 중에 있다. 그 동안 뭔가 열심히 했던 것은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가 아니라 해야하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나를 몰아붙였다. 상대를 다그치기도 했다. 내가 더 나아지고 있다는 성취감과 도취감에 사로잡혀있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모른 채 살았던 시간이다.
주말 국가자격증 시험을 치고 왔다. 과거 나라면 ‘합격’이라는 결승점을 위해 열심히 했을 것이다. 현재의 나는 지금 모습 있는 그대로인 채로 그 자리에 존재하고 왔다. 전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하고 싶은 만큼만 공부했다. 그래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해주었다. 20년넘게 시험불안이 있었다. 처음으로 마음 편하게 시험을 치고 왔다. 그래도 되는거였다. 여유로워도 되고, 그 순간 있는 그대로 있어도 되는 거였다. 이제서야 내 모습을 제대로 볼 준비가 되었다.
잘하려고 하면 힘든 거였다.
있는 그래도 존재하면 되는거였다.
그래도 된다.
이제 소감문을 써볼까. 있는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