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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Jan 09. 2024

내 마음이 뾰족한 순간

2024.1.9 화


나는 예민하다. 아닌 채 굳이 드러내지 않고 살고 있다. 직업적으로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생활 할 때는 에너지가 꽤 많이 드는 편이다. 


종종 그런 이야길 듣는다. 

"누군가가 불편하다면 내 마음속 한편에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네 마음부터 돌아보길"

오늘 이 말을 떠올려보는 몇몇 장면이 있었다. 요즘은 '친밀함'에 대해서 고민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사람과 관계 자체를 두려워했다. 지금은 선택하려 한다. 친밀해지기를 원하는 사람과는 희로애락을 함께할 할 내 마음을 말이다. 예민한 나는 그렇게 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러므로 내가 아는 모든 사람과 그걸 해나갈 힘이 없다.


몇몇 사람들은 나의 경계를 넘어옴을 느낀다. 자신의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내 안에 친밀함 영역을 넘어서 들어온 사람들은 에너지를 기꺼이 내어준다. 하지만 영역 밖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그 에너지까지 쓴다면 내 삶의 에너지는 방전될 것이다.


현재는 남편, 내 아이들, 친밀한 대상 몇몇에게만 그 에너지를 쓰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들에게 많은 에너지를 쏟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그러한 친밀감을 느끼지 못한다. 아니 그러한 에너지를 쓸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러한 내 대상들은 나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대학생 때도 그러한 경험을 했다. 그 친구는 나를 탓하더니, 주변에 나에 대한 험담을 하더니 그리고는 떠나갔다. 그녀는 나에게 친밀감을 원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안전한 대상이 아니었다. 내 에너지를 다 가져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한걸음 물러선다. 그리고 거리를 둔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사람을 좋아하기에 처음에는 호의를 베푼다. 하지만 몇 번 바늘에 찔린 듯 아픔을 경험하면 물러선다.


굳이 그들에게 그 순간들을 다 설명하진 않는다. 이걸 다 말한다면 그들을 또 그럴 것이다.

"진짜 예민하네."


예민한 게 잘못된 건가? 예전에는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삶의 모양이 그러할 뿐이고, 그들은 자기들에게 편안하지 않으니 그 탓을 나에게로 돌릴 뿐이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편안하게 따뜻하게 여기는 친밀한 이들도 있다. 내가 그러함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 내가 내 모습을 인정한다. 여기까지 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온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편안해진다.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일뿐이다.


그들은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리고 더 이상은 내 에너지를 마구 가져가게끔 놔두지도 않을 거다.


나는 내가 지킨다.




<오늘은 내 안의 에너지가 왜 이렇게 크고 뾰족하게 느껴지나 돌이켜보니, 누군가 내 경계를 침범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었다. 몸의 상태를 지켜보니 그렇다.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또한 나는 '마음 에너지가 떨어질수록 공격성도 높아지는구나!'도 알게 되었다. 며칠 동안 집정리를 해서 쌓인 피곤함도 큰가 보다. 이제 좀 쉬고 싶다. 몸과 마음이 휴식하고 싶은 욕구가 크게 올라온다. 오늘 밤은 푹 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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