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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Jan 19. 2024

가리고 싶은 마음

부끄러움에 대하여

2024.1.19 금


화요일 센터 면접이 있었다. 1년 근무했던 곳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근무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불안했던 것일까?


신체적 증상이 관찰되었다. 면접 날 전 후로 수시로 한숨을 쉬었다. 당일에는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닌데도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일어서서 왔다 갔다 했다. 진득하게 앉아서 뭔가에 집중하지 못했다. 금요일 저녁인 오늘이 되어서야 '심리치료에서 정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책을 펼치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수치심이었다. 부끄러웠다. 밑도 끝도 없이 말이다. 나름 열심히 했다. 개인상담뿐 아니라 상담실 전반적으로 행정, 관련 일 등 잘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왜?


면접에서 나쁜 평가를 받거나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차라리 처음 보는 사람이면 상관없었다. 떨어지면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센터장님을 제외한 팀장님 두 분은 평소같이 일을 하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더 걱정이 되었다. 그분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과거에도 평가의 순간이 되면 끝없이 작아졌다. 평소에는 자기감이 비둘기정도 크기였다면, 시험칠 때면 개미정도까지 작아진다. 아니 진드기 정도랄까.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기본값이었다. 그래서 관계도 힘들었다. 누군가와 친밀해지기 힘든 이유가 나 스스로를 작게 생각해서였다.


이런 나를 몰랐던 게 아니다. 과거 교육분석에서도 다루었던 이슈였고, 논문을 쓰면서도 깊게 경험했다. 이제 그건 과거의 '나'였다고 착각했던 거였다. 아직도 내 안에 그 모습이 있었다. 다시금 만났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이제를 그렇지 않을 거라는 큰 기대치가 있었다.


과거 나는 불안했다. 나 스스로 약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조차 없었다. 끊임없이 타인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의지하려면 그들의 평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의 생존방식이었다. 이제 내가 사랑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랬더니 과거 내 모습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산을 넘어야 다음이 있나 보다.


그래서 최근에 주변사람들을 그렇게 밀어내고 있었나 보다. 나는 이제 약한 존재가 아니다. 여전히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선형이지만 나아가고 있다. 직선은 아니지만 빙글빙글 돌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내 안에 힘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참에 마음속 그 라디오는 꺼버려야겠다. 스스로는 끊임없이 작게 만드는 그 소음 말이다.

나는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래, 손가락 끝에 힘을 주자.



그 힘이 온 몸으로 전달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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