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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Dec 06. 2023

슬픔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

눈물의 의미

2023.12.6 수 (2023.10.29 일 작성글)


“어쩌면 산다는 건 말야

지금을 추억과 맞바꾸는 일

온종일 치운 집안 곳곳에

어느새 먼지가 또 내려앉듯

하루치의 시간은 흘러가

뭐랄까 그냥 그럴 때 있지

정말 아무것도 내 것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 

(양희은 ‘늘 그대’ 가사)


눈은 앞을 보고 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이었다. 눈물샘에서 눈물이 이렇게 빨리 만들어질 수 있구나. 눈물주머니에서 나온 액체가 순식간에 눈주위를 맴돌다가 볼 위로 흘러내린다. 오른손으로 휴지를 찾는다. 순간적으로 앞에 차들이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한 손으로 휴대용 휴지를 꺼내려고 하니 입구에서 뭉쳐서 잘 나오지 않는다. 신호등에 빨간불이 걸려야 할 텐데, 다리에 긴장이 느껴졌다.


 한 동안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흘렀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한 가지 이유만은 아니었다. 몇 달을 울고 나니, 내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했던가 싶었다. 대학교 상담센터 근무일을 좋아했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점심 먹는 걸 기다렸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내담자와 상담시간은 기다려지기도 했다. 몇몇 분들은 그랬다. “선생님은 에너지가 높은 편이에요.” 지금은 온몸에 힘이 빠진 느낌이다. 아프기 시작하면서 ‘건강했을 땐 어땠었지?’ 떠올려보기도 한다. 집에서는 소파에 자주 앉아 있게 되었으며, 아침에 기상 시간은 평소보다 늦어졌다.


 우울감으로 힘든 적도 있었다. 산후우울이었다. 슬픔은 일시적이지만 우울은 지속된다. 슬픔은 좋은 일이 생기면 느낄 수 있지만, 우울은 좋은 일이 생겨도 자각하지 못한다. 우울은 나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수면에도 영향을 미친다. 밤마다 잠들지 못하는 그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우울한 상태는 아니다. 슬픔이었다. 우울에서는 벗어나고 싶어서 발버둥 쳤지만, 지금은 충분히 머무르고 싶다. 예전에는 슬퍼지기만 해도 우울로 갈까 두려웠었다. 애써 더 밝게 지내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이제야 슬픔을 제대로 만나고 있다. ‘슬픔(sadness)은 헤어짐이나 분리 혹은 애착의 상실에 기인한다.’(심리치료에서 정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231쪽) 책에서 답을 찾고 싶어서 펼쳤다가 만난 문장이다. 나는 무엇을 상실했까.


 8월부터 1~2주 한 번씩 교수님을 찾아갔다. 논문지도를 받는 줄 알았는데 교육분석(상담자가 받는 심리상담)에 가까웠다. 찾아갈 때마다 울었다. 첫날 집에 돌아올 때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1시간 넘게 운전한 길이 기억나지 않았다. 총 7회기가 진행되는 동안 흘린 눈물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 번째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눈물이었다. 교수님을 만나고 50 분도채 되어 않아서 눈물을 흘리게 될 줄 몰랐다. ‘그동안 난 어떻게 살았나’에 대한 자각이었다. 나는 자신을 가두어 살고 있었다. ‘안전’에 대한 욕구가 높다는 이유로 말이다. 교수님께서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나’를 만나보라고 하셨다. 이미지가 하나 떠올렸는데, 거미줄에 걸린 나비였다. 하늘을 향해 날갯짓을 하며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떠올랐다. 죽음이 두려웠던 것일까, 무엇이 그리도 두려웠을까. 안전하고 싶어서 여러 면에서 나를 끌어내리고 좁은 공간에 가두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척하면서.


 두 번째는 관계 상실에 대한 눈물이었다. 교육분석 2회기 차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생전 아버님께 살가운 며느리는 아니었다. 남편과 시아버지 관계를 잘 알고 있기에, 마냥 존경할 수만은 없었다. 남편은 아버님께 분노하는 순간이 많았다. 장례식장에서 상주인 남편은 소리 내어 울었다. 눈물과 콧물이 함께 튀어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이 무거웠다. 남편에게 아버님은 어떤 존재였을까. 가까운 사람의 상실을 지켜보는 것도 눈물이었다.


 남편과 나의 관계에도 변화가 있었다. 남편은 우리 사이를 ‘졸혼’이라고 했다. 하지만 남편의 행동은 다르다. 내가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 데려다주고, 마취가 깬 후에는 뜨끈한 국물이 시원한 복국도 사준다. 주말에는 따뜻하게 다니라고 외투도 사준다. 하지만 말은 “우리 이혼해. 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고 한다. 그 마음은 또 뭘까. 예전에는 남편의 말에 상처받았다. 그의 행동을 보지 못했다. 남편의 뾰족한 말 뒤에는 나를 돌보는 마음이 담긴 행동이 있었다. 교수님께 교육분석을 받으며 마주하게 되었다. 과거 내가 얼마나 그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말이다. 내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그에게 수동공격을 하고 있었다. 내가 상처받은 만큼, 아니면 그보다 더 나에게 상처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알게 된 순간 머리가 아플 만큼 울었다. ‘회한’이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게 되었다. 첫 번째 눈물과 이어졌다. 과거 시간들이 머릿속으로 휘리릭 지나갔다. 땅 속 깊이 들어가고 싶은 만큼 그에게 미안했다. 그가 나에게 느꼈을 좌절감, 거절감, 연결되지 못함에 대한 슬픔이 느껴졌다. “너는 사랑받을 줄 몰라.”라고 말했던 그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울고 또 울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에게 미안하고, 정말 미안하고 말했다. 그 이후 남편의 말투가 달라지고 있다.


 세 번째는 수용에 대한 눈물이다. 알게 된 걸 받아들이는데도 에너지가 든다. 이제 와서 내가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다. 나는 그동안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 자신조차도 말이다. 이걸 받아들이는데 수많은 눈물과 마주해야 했다. ‘있는 그대로 나’도 받아들이는 중이다. 2018년에도 걷지 못할 만큼 아팠다. 당시 한국방송통신대학 청소년교육과에 편입해서 다니는 중이었고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아플 때 집중해서 공부하지 못하는 나에게 짜증이 나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화를 냈다. ‘뭔가를 잘해야만 해.’라는 문장에 나를 가둔 시기였다. ‘잘 해내는 나’만 가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올해 아픔을 통해서 ‘그래도 괜찮다’는 수용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래도 되는 거였다.


충분히 슬퍼해도 되고,

과거 나를 안타까워해도 되고,

가까운 이에게 미안해해도 되는 거였다.


슬픔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이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Sasin Tipchai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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