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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Dec 07. 2023

"너 친구 없어?"

약속을 잡는다는 것

2023.12.7 목


오전 8시 50분, 1시간 고속도로를 달려서 교수님을 뵙고 교육분석을 받았다. 10회째 만남이라 다음 일정을 논의했다. 11시 마치고 나와서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돼지고기 가득 든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으며 나왔다. 노란 밥공기에 담긴 쌀밥을 천천히 떠서 먹었다. 주변에 학생들이 가득했다. 11시인데 왜 이리 많을까 싶었더니 특식이 있는 날이었다. 스테이크와 파스타, 4500원에 먹을 수 있었다. 커피를 한잔 먹을까 하다가 심학원 과제가 밀려 있어서 일단 우리 동네로 넘어왔다.


어젯밤 사이 비가 내렸나 보다. 주유할 때마다 세차를 하는 편인데, 지난번에 한번 그냥 지나갔더니 차가 지저분하다. 누런 먼지들이 빗방울 자국과 함께 남았다. 주유도 하고 세차도 했다. 그리고 바로 옆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았다. 100일 글쓰기를 함께 300일 넘게 같이 한 코치님이 매년 연말 '플랜&버킷 100'방을 열어주신다. 오늘은 두 번째 미션데이다. 내년 일정을 체크하는 거다. 2024년 다이어리에 주요 일정을 체크했다. 은근히 시간이 많이 든다. 1시간가량 걸렸다. 주요 시험일정 체크하고, 가족 생일, 아버님 제사 등등 다이어리 한 장에 정리했다. 올해 3년째인가 더 되었나 기억이 가물하다. 처음에는 하라고 해서 했었는데, 지금은 내년 계획을 왜 세워야 하는지 안다. '나'로 덜 흔들리며 살아가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그 후 책을 펼쳤다.


점심시간 이후 차 한 잔 마시기 위해 카페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해도 지고 있다. 화요일 상담센터 출근했을 때 먹은 음식이 떠올랐다. 베트남 음식점이었는데, 베트남 분이 운영하는지 한국말이 통하지 않았다. 나올 때 보니 내 메뉴가 잘못 나왔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메뉴여서 인지, 그 메뉴가 나와 맞지 않았던 건지 속이 니글거렸다. 동료 선생님이 시원한 콩커피를 사주어서 느끼함이 내려가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득 그 느끼함이 목구멍 근처에서 느껴지는 거 아닌가?


난 사실 태국음식점을 좋아한다. 똠얌꿍, 모닝글로리 볶음, 팟까파오 무쌉 이렇게 세 개는 최애메뉴다. 운전해서 30분 거리에 좋아하는 태국 음식점이 있는데, 혼자 가면 이렇게 먹을 수 없다. 포기해야지 하고 있었다. 그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다른 날보다 일찍 갈 거 같아."

"그럼 태국음식 먹으러 가자."

"너 친구 없어?"

"어, 지금 같이 먹으러 갈 친구는 없는데?"

"그건 안돼. 운동은 다 같이 가고 마치고 옷 갈아입고 하면 7시 30분, 8시 될 거야."


'나는 왜 다른 누군가와 함께 뭘 먹으러 갈 약속을 잡기 힘든 걸까.'

이건 저번 달부터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다. 


떠오르는 답들을 정리해 두자.


첫 번째, 일정이 빡빡하다. 누군가를 만나려면 그 사람의 일정도 고려해야 하고 조율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게 어렵다. 내 일정도 빡빡한데, 맞추기가 어렵다. 틈틈이 여유 시간에는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써야 하고, 심학원 과제 책 읽기, 글쓰기도 해야 한다. 이번달 주제는 철학이라 더 침잠된다. 다음 주에는 자격증 2차 시험도 있다. 시험 준비도 못하고 있는데 사람 만나는 건 부담이다.


두 번째, 보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다. 교육분석 시간에도 나온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애에 관심도 없고 잘하지도 못했겠지. 결혼한 게 신기하다. 친한 언니들 몇몇은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약속도 내가 여유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정하는 편이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내가 항상 바쁘다고 인지하고 있어서인지 보자고 자주 연락 오지도 않는다. 일 년에 몇 번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친한 지인들은 몇몇 있다. 그런 분들이 편하다. 


세 번째, 용기가 없다. 사실 지금 내가 전화해도 만날 분들이 분명히 반경 10km 이내에 있다. 그런데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들 삶이 바쁜데 방해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네 번째, 혼자가 편하다. 이래저래 고민하다 보면 혼자가 편하다.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건지, 적응된 건지 모르겠지만 이게 편하다. 누군가와 만나려면 용기라는 마음의 산을 넘고, 전화기를 열어서 연결을 시도해야 한다. 실행의 산을 넘어야 한다. 에너지가 많을 시기에는 그렇게도 했다. 지금 내 상태를 배터리로 본다면 30~40%로 근근이 살아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만남이 부담스러운가 보다.


친동생들도 다들 다른 도시에 살아서 계절에 한 번 같이 밥 먹기도 어렵다. 이럴 때는 친한 동네 언니들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약속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친밀감'에 대한 이야기다. 그나마 남편은 친하다고 느끼나 보다. 선뜻 뭘 같이 먹자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 말이다. 


현 상태로는 몸도 마음도 에너지가 더 채워져야 할 듯하다.

그리고 시간적 여유도 있어야지 약속을 잡을 수 있을 거 같다.


오늘 다이어리를 적어보니, 내년에도 그다지 여유롭지 않을 거 같은데,

그럼 사람은 언제 만날까?




*식물을 보면 내적친밀감을 느낀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는 초록 친구들.

내가 먼저 다가가도 물러서지 않는 안전한 대상



사진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Dim Hou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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