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타티스 Dec 12. 2023

나를 데리고 살아갑니다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



2023.12.12 화


"어디세요?"

"다 왔어요. 엘리베이터 앞이에요."


 오후 4시 수업인데 정각에서 딱 1분 지나있었다. 봄에서 여름 넘어갈 무렵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아직도 초보 수준이다. 중간에 학회 논문포스터 발표하느라, 수술 후 회복기간에, 이번에는 선생님이 아프셔서 시간이 흘러 흘러 12월이 되었다. 처음에는 의욕이 앞서서 일주일 3회 수업을 예약해 놨다가 못 가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이제는 시간을 고정해 두었다. 그랬더니 마음이 편하다. 학원까지는 차를 타고 가면 8~9분, 걸어가면 30분이 걸린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이럴 때는 걸어가야지.' 강가에 걷기도 애매해서 산책을 쉬었더니 최소한으로 움직이려면 걸어가야 한다.


최근에 아파보니, 매일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눈뜨면 체조, 걷기, 잠들기 전 어깨 스트레칭 등 루틴이 있었다. 그래서 아프지 않고 학교를 졸업했다. 문제는 졸업하고 나서다. 뚜렷한 목표가 사라지고 나니 공허해졌다. 개인적으로 환경적 변화도 있어서 주변 세계가 모두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내 인생을 지구로 본다면 각 판들이 움직이는 지각변동의 시기랄까. 그러니 수시로 화산도 폭발하고, 어떤 세계와 어떤 세계는 충돌해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 사이 이사도 하고, 전세자금 관련 일도 있었다. 앞으로 진로도 생각해야 했고, 내 일(상담, 강의 등)도 계속하고 있었다. 일상이라도 소용돌이 같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몸이 아팠다.


이제는 안정화시기에 들어왔나. 내 몸이 보인다. (MMPI-2 내 프로파일을 봐도 나는 신체화증상으로 나타나는 편이다. 상담사의 소소한 즐거움, 심리검사결과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기) 몸이 아프면 마음도 무거워진다.


신체적 건강을 돌보는 건 나에게 1순위가 되었다. 나를 잘 데리고 살아가는 방법 중 일상 속 운동은 가장 중심에 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되도록 강가에 걷기 운동을 하려고 한다. 예전에 습관화되어있을 때는 고민 없이 나갔었다. 2023년은 상반기에는 주 1회 정도도 겨우 했다. 이제는 다시 매일 해보려고 한다. 아직은 주 2-3회 정도 하는 수준이다. 습관은 만들기는 어려워도 놓기는 한순간이다.


 마음보기앱도 1년 치 결제를 했다. 19년도부터 나를 잘 데리고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앱이다. 매일 눈뜨는 게 괴로웠던 시절에 나의 아침을 함께 맞이해 준 앱이다. 그동안 '마보'회사도 성장했다. 거의 초창기부터 이용했었기에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커가는지도 지켜보았다. 나는 사업을 할 자신은 없지만, 다른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건 꽤 뿌듯한 일이라는 걸 안다. 이용자일 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느끼는 것이다.


 마보(마음보기 앱이름)를 생활 속에서 활용하는 나만의 방법은 이렇다. 최근 딸과 싸웠을 때 응급 명상을 했다. [화] 가족이나 살아하는 사람에게 화가 날 때 하는 명상(15분)을 함께 했다. 집중할 때 50분 명상을 활용하기도 한다. 명상입문부터 시작해서 책낭독, 시, 다른 이들의 사연이 담긴 이야기도 담겨있다. 내 마음을 스스로 돌아보기 힘들 때 함께 해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앱이다. 나에겐 그랬다. 몇 년 전 마음이 꽤 많이 우울했을 때는 이 앱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면접 보기 전에 심호흡하며 1분 명상을 하기도 하고, 회사 출근하기 싫은 날에도 명상을 했었다. 이 친구(앱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도움을 꽤 많이 받았다. 요즘은 안정화되어서 가끔 만나는 편이다. 이제는 어떨 때 만날까 고민하는 중이다.


 예전엔 주어진 시간을 모두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비효율적인 시간들을 견디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쉼표도 필요하고 마침표도 필요하다. 달리기만 하다 보면, 크게 넘어진다는 것도.


어제 필라테스 학원에 걸어가면서 밀리의 서재로 오디오북을 들었다. 이번 주 시험을 앞두고 있지만, 종종거림보다는 여유를 선택하고 싶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더라도 큰 일 나는 건 아니다. 요즘은 걷기 운동을 갈 때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을 듣는다.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 중에는 완독을 해주는 책들이 있다. 올해 초에는 '불편한 편의점 1, 2편'을 들었다. 아직도 그 스토리들이 떠오른다. KTX를 타고 가면서 들었기에 서울역 주변에 풍경들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연들을 안고 살아갈까 생각하기도 했다.


 이젠 연남동이다. 서울에 사는 것도 아닌데, 친근하게 느껴진다. 빨래방을 중심으로 여러 등장인물의 사연이 나온다. 그중 7세 여자 아이를 키우는 경력단절 여성이 '살기 싫다'라고 빨래방 공용 다이어리에 적으며 시작하는 사연은 특히 공감이 갔다. 결혼 초창기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십 대 후반 내 모습이 겹쳐서 걸으면서 울었다. '나도 그랬었구나!' 과거의 나를 이제야 공감해주고 있다. 그때는 빨리 달려 나가느라 나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하루 중 어떤 시간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기도 하고, 어떤 시간은 과거로 돌아가서 나를 만나기도 한다.


'그때 나도 주인공 미라처럼 힘들었었구나!'

마음속에 미라 옆에 내 이미지를 떠올리고 토닥토닥해 주는 상상을 한다.


그때 힘든 게 이상한 게 아니었다.

당연한 거였다. 그 누군가에게도 털어놓지 못했기에 가슴에 무겁게 돌덩이처럼 안고 살았을 뿐이다. 나에게 글쓰기가 없었다면, 그 무거움을 어떻게 털어냈을까. 그때에 글쓰기를 했던 나를 칭찬해주기도 했다. 살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이제는 글쓰기로 나를 돌보고 나를 키우고 싶다.


그때 쓴 글들을 보면, 그때 나와 만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그때도 돌아간 느낌도 든다.


그래서 이렇게 또 기록한다.

오늘의 나를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


내가 나를 돌보는 방법이다.


나를 제대로 사랑하려고.





사진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Ylanite Koppens님의 이미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 나설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