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읽어주다
2023. 12.18 월
2023년 12월 16일은 열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이다. 남편은 운동 약속이 있어서 갔고, 나는 북리딩 모임이 있었다. 큰 아이는 전날 두 친구를 불러서 우리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했다.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 기억난다. 나는 산모였다. 첫째를 출산하고 산후조리원에 있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기억할만한 일이 없어서인지 결혼기념일에 특별한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친정아버지는 어머니께 결혼기념일마다 꽃을 선물하셨고, 엄마는 보석을 좋아하셔서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다들 그런 줄 알았다. 시어머니는 결혼기념일을 일 년 중 싫어하는 날 중 하나였다. 남편의 내면에는 은근히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였을까. 나도 따라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로 생각하는 방향으로 애써 노력하고 있다. 처음에는 싸웠던 거 같고, 이후에는 점차 지쳐갔고 이제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하고 있다. 일 년 중 그저 똑같은 365일 중 하나일 뿐이다.
나의 내면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꿈에서 결혼기념일 관련 내용이 나왔다. 일어나자마자 기록하지 않아서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토요일 북리딩 수업을 다녀와서 잠들 때였나 보다. 남편은 1박 2일 일정이라 집을 비웠다. 우리는 서로 결혼기념일이라는 단어조차 꺼내지 않았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뭐였을까.’에 대한 생각에 빠졌다. ‘남들처럼’이라는 단어에 갇혀있는 건 아닐까. 내담자들 만나 대화할 때 턱 걸리는 단어이다. “다른 사람들은~”, “남들처럼~” 불특정 다수와 나를 비교하면서 나를 작게 만드는 패턴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채널A)는 거의 빠짐없이 챙겨보는 프로그램이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르는 스타들의 속마음이 나온다. 이번에는 작곡가 ‘박선주’였다. 1971년생인 그녀는 셰프 강레오와 결혼했고, 2012년생인 딸을 제주도에서 키우고 있다. 딸 평소 그녀의 육아 철학을 지지하는 편이었고, ‘부부가 떨어져 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녀가 자라온 환경에 대해서는 몰랐었다. 아버지는 강력계형사셨고, 엄마는 전통적인 어머님역할을 하셨다. 엄마가 다 챙겨주셨지만 아버지는 수학여행도 못 가게 할 만큼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이셨다. 데뷔 후에도 방송에 립스틱조차 바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밤무대 등 행사는 꿈도 꿀 수 없었다고.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그녀는 미국 유학을 선택한다. 이후 아버지와 연락을 단절했다고 한다. 엄마와는 연락했었고, 6년 뒤 교수가 되어서 한국에 돌아와서 아버지를 뵀을 때 한마디 하셨다고. ”잘했네. “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유년시절을 보낸 그녀는 본인의 자녀만큼은 자율성을 부여해 주고자 노력했다. 현재 자신의 직업을 ‘강솔에이미’(딸) 매니저라고 소개할 정도이다. 7살 때부터 비행기를 혼자 타고 다녔다고 한다. 오은영선생님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도 좋지만 자녀가 성장하면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길게 적는 이유는 나의 성장과정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유학을 간 후 한 달 뒤 집을 버리고 싶을 만큼 지저분했다고 한다. 정리, 살림등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삶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52세 이인 지금 삶의 철학이 뚜렷해 보이는데, 그때부터 만들어온 그녀의 내적 세상이었다. 나이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안심이 되어서였다. ‘나는 언제 저렇게 독립적으로 내 세상을 뚜렷하게 가질 수 있을까’ 부러웠기 때문이다. 20대 후반부터 만들어왔다고 했다. 나도 나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 중이라 그녀의 삶의 스토리는 큰 위안이 되었다. 그 외 불안한 마음, 내가 한 성과가 뚜렷하지 않으면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모습 등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지화”
그녀가 주로 쓰는 방어기제였다.
감정은 억압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억압은 억누른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고, 주변사람들은 그 감정들을 알아차린다.
이지화는 생각은 있는데 감정이 없는 것이다. 감정은 하나도 없는 로봇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이지화의 특징은 1) 감정이 배제된 무미건조함, 2) 질서 정연, 3) 꼼꼼하고 세심하다. 감정보다는 생각이 앞선다. 감정을 억압하니까 실수할 가능성도 낮아지는 것이다. 감정을 머리로 통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감정보다 인지가 성숙한 것이라고 오해한다. 감정을 누르고 생각대로 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내용 출처 유튜브 : https://youtu.be/YRabcMSlKPk?si=czxqgU8cck_iDzwA)
과거 내 모습도 떠올랐다. 그녀의 사연과, ‘이지화’라는 방어기제를 찾아보면서 많은 삶의 장면들이 지나갔다. 어쩌면 결혼기념일도 ‘이지화’ 방어기제로 다루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주말에 시댁에 들러서 원가족들과 대게를 먹고 왔다. 나는 은연중에 밥은 한 끼 같이 먹겠지 하고 있었고 ‘대게를 먹고 싶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점심을 대게로 먹었다고 말하는 순간 가슴에서 감정이 훅하니 올라왔다. 알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큰 아이도 외출 중이었고, 둘째와 돼지갈비에 냉면을 시켜 먹었다. 남편은 시댁에서 돌아올 때 두 손 가득 김치를 들고 왔다. 김치를 담은 비닐봉지가 엄청 커서 저걸 김치냉장고에 다 넣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남편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그런다.
“너 표정이 왜 그래? “
예전에는 이 말은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총알 발포의 의미였다. 이제는 안정적인 가정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크고 매 순간 알아차리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둘째는 남편의 이 말을 듣자마자 수첩을 들고 와서 말한다. “엄마 아빠 싸우는 거야?” 우리는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섭섭한 마음이 있었고, 남편은 김치를 얼마 전에 들고 왔는데 또 들고 와서 불편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남편은 설명을 시작했다. “지난주 엄마가 둘째 만났을 때 할머니 김치 맛있다는 이야기 듣고 또 담으셨대.” 이 말을 듣고 나니 시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손녀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사랑해’라는 표현 등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투르시니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베풀고 싶으셨나 보다. 그걸 말로 표현했다.
“어머님께서 둘째한테 사랑을 표현하고 싶으셨나 봐.”
긴장감은 이렇게 풀어져갔다. 우리 부부는 둘 다 감정 표현에 능한 스타일이 아니다. 남편은 회피하려 하고 나는 이지화라는 방어기제를 썼었다. 그리고 과거 안 좋은 기억들이 떠오르는 트라우마 상황에서는 표정이 경직되고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진다. 남편에게 이 부분을 설명한 적 있다. 이번에는 그가 이 신호를 읽었다.
“너, 이 김치 다 안 들어갈까 봐 걱정했던 거지?”
그때까지 몰랐었다. 김치의 양에 압도되었다는 걸 말이다. 16년의 세월은 허투루 지나간 게 아니었나 보다. 그 말을 듣고 온몸에 긴장감이 풀어졌고, 남편이 김치를 같이 넣어준 덕분에 큰 통 두통과 글라스락 몇 통으로 나누어 담을 수 있었다. 같이 하면 별 것도 아니고 금방 해결되는 걸, 미리 걱정하고 얼어붙었었다.
남편이 주말에 운동 갔다 온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듣다 보니 재미있었고 나는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싸울 뻔했던 상황이 일상상황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 경험을 글로 남겨놓으려고 브런치를 펼쳤다. 남편이 내 긴장과 불안, 감정을 읽어준 경험이다.
과거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내가 읽지 못했을 것이고 그래서 기억의 저장소에 없을 것이다. 없었던 게 아니다. 이제 내가 이해하고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은 그동안 참 억울했겠다 싶다.
그나저나 결혼기념일 관련 감정은 아직 남아있는 거 같은데, 그 마음도 읽었는지
“다음 주에 밥 같이 먹자.”라고 한다.
우리 부부 둘 사이 관계에서는 나보다 남편이 훨씬 감정 알아차림에 민감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하루였다. 지난 17년 크고 작은 사연들이 많았다. 10년하고도 7년이 지나서 서로를 더 알게 되어가고 있다.
사진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Andrew Martin님의 이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