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운전 배우기
2023.12.19 화
"빨리 가~"
어제부터 맹추위가 왔다. 아이들 내복을 쿠팡으로 부랴부랴 주문했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려는데 문 앞에 택배를 확인했다. 집 밖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서 첫째한테 소리쳤다. "추우면 내복 입고 가. 도착했어." 그랬더니 아침에 늦을까 걱정된 남편이 방 안에서 나에게 큰 소리로 말했던 거다.
대학교 학생상담센터에 주 1~2회 출근하고 있다. 국립대학교라서 근무시간이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집에서 1시간가량 걸리는 곳이고, 출근시간 차가 밀리면 추가 시간이 무한정 늘어난다. 여름휴가기간과 겹치면 도로에 갇혀서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남편이나 나나 J(계획형) 스타일이다. 특히 일과 관련해서는 둘 다 미리 도착하는 걸 선호해서 남편이 나를 배려한 외침이다. 예전에는 몰랐다. 나를 타박하는 줄로만 알았더랬다. 누군가의 진심이 느껴지면, 같은 언어도 이렇듯 다르게 느껴진다. 표현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20살에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당시 조경학 전공이라 엄마가 1종 보통을 따놓으면 뭐라도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에 반강제적으로 운전면허 시험을 쳤다. 운동신경이 워낙 떨어져서 부모님은 내가 한 번에 운전면허를 못 딸 줄 아셨나 보다. 운전면허만 따면 차를 사주겠다고 아버지는 그렇게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막상 그 순간이 오니 회피하셨다. 아니, 본인의 차 운전석 근처에도 못 가게 하셨다. 그렇게 장롱면허가 되었다.
면허 취득 후 바로 실전을 경험하지 못하니 두려움만 커져갔다. 상담을 중간에 쉬었을 때도 비슷한 두려움이었던 거 같다. 2018년 11월이었다. 너무너무 가고 싶은 교육이 있었는데, 도저히 대중교통으로 갈 방법이 없었다. 남편에게 차를 사주면 운전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막상 중고차가 내 소유가 되니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남편이 운전면허 연수를 시켜주었다. 대학교 교내에서 커브, 주차 등등 기본적인 걸 알려주었고 대학교 몇 바퀴 돌고, 우리 동네 몇 번 운전하면서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운전에 대한 감이 없었다. 운전을 잘하게 되면 자동차가 내 몸처럼 느껴지는 감각이 생긴다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남편은 하나하나 세세하게 알려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큰걸 던져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 당시에는 운전 연수를 돈을 들여서 받을 만큼 가정경제가 여유롭지도 않았다. 혼자서 해내야 했다. 유튜브를 찾아봤다. 세상에, 없는 게 없었다. 운전에 대한 감을 영상으로 익혀갔다. 그리고 그 후로는 거의 매일 운전했다. 당시 남편은 내 첫차로 2011년식 중고차를 사주었다. 후방카메라가 없었다. 주변 감지 센서도 없어서 삑삑 소리도 나지 않았다. 초보에게는 크나큰 시련이었다. 그래서 주차장에서 기둥에 박았다. 차 허리 쪽 감이 오지 않아서 어느 정도 되면 기둥에 박히는지 몰랐던 거다. 생초보때 일이다.
직진만 했었다. 차선변경하려면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싶기도 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그때는 큰 시련이었다.
오늘 출근하는데 갑자기 그때가 떠올랐다. 출근길 차들은 운전자의 마음이 보인다. 급한 차들은 요리조리 차선변경을 하며 달려간다. 예전에 남편에게 물은 적 있다.
"도대체 차선변경은 어떻게 하는 거아?"
그때 남편이 해준 말이 있다.
"운전하다 보면 도로에 빈 공간이 보여. 거기에 들어가는 거지."
2018, 2019, 2020,2021, 2022, 2023년
운전 시작 후 6년 차이다. 이제 그 빈 공간이 보인다. 오늘 출근길에도 그랬다.
초보가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 경험이 쌓이니 보인다.
남편은 인생에 대해서도 나에게 그런다.
"지금 너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거야."
예전에는 공격으로 들렸다. 이제는 애정 담긴 이야기라는 걸 안다.
내가 일하는 영역에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예전에는 남편이 하는 '말'에 집중했다. 이제는 그 말에 담긴 '의미'가 보인다.
함께한 세월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시간들이 쌓였나 보다.
이제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