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
2025.2.18 화
나는 부지런한 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식물을 키우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다. 게다가 식물마다 좋아하는 환경이 다를 것이고, 내가 그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식물을 들이게 된다.
첫 번째 식물은 친한 언니에게 선물받은 아이였다. 언니가 작업실에서 정성껏 줄기를 내려 뿌리를 만들어 주었고, 직접 예쁜 그림을 그린 유리병에 담아 내게 건네주었다. 그건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를 집에서 키우기로 했다.
두 번째 식물은 작년 수업을 위해 준비했던 미니 다육이였다. 그날 학교에 일이 있어 결석한 학생이 많았고, 수업에서 사용하고 남은 다육이들은 내 곁에 머물게 되었다. 책장 한켠에서 자라는 작은 다육이들. 소스 그릇에 6~7개를 모아두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그렇게 1년째 내 곁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은방울꽃. 정말 고민 끝에 들인 아이였다. 처음에는 키우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세 뿌리를 데려왔다. 은방울꽃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내가 첫째에게 지어준 닉네임이기도 하고, 남편과 연애를 시작할 때 그가 내게 붙여준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나를 ‘스타티스’라 불렀고, 나는 그를 ‘로단테’라 불렀다. 사내 비밀 커플이었던 우리는 본명 대신 암호 같은 이름을 저장했고, 지금까지도 스마트폰 속 서로의 이름은 그대로다. 그는 여전히 내게 ‘로단테’다.
우리는 애초부터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같은 사무실에서 등을 맞대고 앉아 하루 종일 함께했고, 결혼 후에도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며 24시간을 공유했다.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상대의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 서로에게 좋은 일일까?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엔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느낀 것처럼, 아마도 그도 그러했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주말부부처럼 지낸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이 가장 좋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하는 부부들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충분히, 아니, 넘칠 만큼 함께했다. 그래서 지금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식물도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고 물을 주며 관심을 쏟으면, 잎 끝이 누렇게 변한다. 과습이다. 필요한 것보다 많은 관심은 식물에게 독이 된다. 반대로 베란다에 둔 식물을 한 달간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6월의 뜨거운 햇빛 아래, 밤낮의 극심한 온도 차 속에서 물 한 모금 없이 버틴다면? 결과는 명확하다.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 대상이 어떤 상태이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적당한 거리란 무엇일까? 너무 가까운 것도, 너무 먼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일 것이다. 식물을 잘 키우려면 먼저 그 식물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건조한 환경을 좋아하는지,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지.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느 날 동료 선생님과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저는 나중에 정원이 있는 집에 살고 싶어요. 버드나무를 좋아해서 꼭 심고 싶은데…”
“강가에 있는 그 버드나무요? 물을 좋아하는데…”
“아, 몰랐어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을 찾는 데는 관심이 많지만, 그 식물이 어떤 환경을 필요로 하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람도 그렇다.
남편과의 관계도 그랬다.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하는지, 나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에만 관심을 두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의 본질이 아닌, 나를 향한 태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마치 식물이 내 기대에 맞춰 자라주길 바라는 것처럼.
관계를 잘 가꾸려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에게 맞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적당한 거리, 적절한 관심. 그것이 우리를 더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법 아닐까.
2024.6.7 금 에 시작해서 2025.2.18 화 에 완성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