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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주제 찾기

자문화기술지를 준비하며 세상 바라보기

by 스타티스


2023.12.22 금 오전 11시


한여름에 진땀 흘리며 찾아갔던 곳이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지도교수님이 될 분의 방이다. 석사 때는 합격 후 지도교수님 컨택을 했었다. 박사는 사전에 컨택이 필수라고 했다. 초여름이 연락을 드렸다. 동짓날이 되자, 첫 번째 소논문의 주제를 찾아가는 중이다. 시간이 흐르면 계절이 변화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도 변화한다.


처음에는 눈 마주치기도 힘들었던 분인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말도 하게 되고 내 생각도 표현하게 된다. 자문화기술지는 아무래도 연구자인 내가 연구대상이 되는 것이므로, 삶을 더 면밀하게 관찰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시선이 밖이 아니라 나를 향하는 것이고,

나와 내 주변의 관계를 더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생각했던 주제와 다르다. 영역은 비슷하겠지만, 방향이 달라지고 있다. 교수님께서 자문화기술지 수업을 할 때 했던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하기(doing)’에서 ‘되기(becoming)’로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은 중요하다.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어떻게 살아야 해?

이것이 모든 인류의 질문이라고 한다면,

논문은 일반화가능성이다.


자문화기술지는 상호주관적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미 상호작용이 시작되었다.

지금 떠오르는 것 메모, 기록했다가 논문의 한 챕터로 활용하면 된다.

자문화기술지를 쓴다는 것은 자기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사회문화적인 맥락을 드러내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매 순간 경험하고 있는 자신의 경험이 연구의 소재가 된다.

모든 질적 논문의 근원에는 현상학이 있다.

우리가 생활세계에서 어떤 게 반응하는지 관찰

일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연구가 된다.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가 되는 것이다.




교수님을 뵙고 온 날에는,

자문화기술지 수업 때 필기한 내용을 간혹 꺼내서 본다.


그때는 머리로 이해했다. 지금은 '연구가 된다'는 의미를 경험하고 있다. 내 생활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걸 관찰하는 것이 연구라고 해서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이고, 지금 이 순간 더 흥미롭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만 나를 관찰하는 시선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달에 읽고 있는 보부아르 언니의 '제2의 성'과 같은 책은 보물 같다. 나의 개인적인 고민과 질문인 줄 알았더니 여성의 상당수가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내가 쓰고 싶은 논문이 그러하다. 이 교수님을 찾아간 것도 논문을 읽고서였다. 딱딱한 논문이 아니었다. 교수님의 삶이 녹아있는 글이었다. 보부아르 언니의 글도 그랬다. 친정언니보다 더 친절하게 세상에 대해서 알려주는 느낌이다. (나는 언니가 없으므로, 보부아르 '언니'로 하는 걸로)


아직은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논문이라는 글로 옮기는 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는 어렴풋이 느끼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교수님을 찾아뵜을 때는 눈물, 또 눈물

그다음에는 깊은 심연

이제는 평온함을 찾아가고 있다.


교수님께서도 조금만 더 정리되면 글로 써보자고 하셨다.


그 또한 걱정되기도 하지만

기대되기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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