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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Dec 26. 2023

남편이 좋아하는 것

그동안 몰랐던 것들

2023.12.26 화


"너 뭐 하고 싶어?"

"먹고 싶은 거 없어?"

"저거 사고 싶어?"


남편이 나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나는 좋아하는 게 뚜렷하다. 주말 아침에는 산책하고 맥도널드가서 맥모닝 먹기를 좋아한다. 카페처럼 새로운 공간에 머무는 걸 좋아하고, 글쓰기는 계속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이다. 공부하는 것에 관심이 많고, 음식은 한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남편에게 "뭐 먹고 싶어?" 물었다. 남편은 "난 특별히 가리는 게 없어서 네가 먹고 싶은 거." 예전에는 당연한 건 줄 알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아이와 바깥나들이를 갔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집에서 쉬는 편이다. 아침에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정우성이 청각장애인으로 나온다.(나는 장애인이라는 말이 불편한데 다른 단어가 없을까?) 보육원에서 자란 차진우는 어릴 적 열병으로 청각을 잃는다. 이후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살아간다. 대학에 진학해서 친밀감을 느끼는 대상을 만나지만 헤어지게 되고, 이후 사랑은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배우지망생 정모은이 나타난다. 둘은 제주에서 만난다. 불이 난 카페에서 소리를 듣지 못해 대피를 못하는 차진우를 모은이 가서 데리고 나온다.


 둘은 함께 시간은 더 많이 보내게 된다. 모은의 대사 중에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 없는 거 같아요."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당연히 말하고, 들었다. 그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건 귀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고, 말을 할 수 있는 건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게 아니었다. 감사할 일이었다. 진우는 눈과 손으로 대화를 나눈다. 눈을 깜박이는 동안에는 세상과 단절된다고 했다. 귀로 들을 수 있다는 건 내가 여기 이곳에 살아있다는 감각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거였다.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간다는 안정감. 이 크나큰 든든함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남편과 관계도 그랬다. 그는 나에게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곳에 밥을 먹으러 가면 남편이 종종 그랬다.

"너 먹고 싶은 거 두 개 시켜. 음식이 나왔을 때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나머지는 내가 먹을게."

난 먹는 걸 좋아한다. 이 말속에 그의 배려, 그의 사랑이 담겨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저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사람들과 소통이 많지 않은 나는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연애경험도 별로 없으니 말이다. 가끔 남편이 억울하면 그랬다. "어디 가서 연애라도 하고 와!" 그 말도 듣고 흘렸었다.


사십 대가 되어서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사랑의 첫 번째 단계가 뭐지?' 고민했다. 관심이었다. 남편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자세히 안다. 어쩌면 어떤 순간에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게 아닐까 착각할 때도 있다. 나는 남편에 대해서 뭘 알까. 이제 그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남편은 만화책을 좋아하고, 건담도 좋아했다. 둘째 장남감 살 때 남편도 신나서 매장에 들어갔는데, 그 동안은 둘만 보내서 몰랐다. 일요일에는 그가 뭘 좋아하는지 보려고 매장에 따라가서 옆에서 지켜봤다. 남편이 이 모델은 어떻고 저 모델은 어떻고 설명을 해준다. '건담을 좋아했구나!' 그 동안 흘려들었었더랬다. 어릴 적 조립하는 걸 좋아했는데 사십이 훌쩍 넘어서 다시 조립을 시작했다. 가정경제가 어려울 때는 그는 철저하게 '생산'과 관련된 일만 했었다. 조금 여유가 생기니 스스로를 돌보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우선이었다. '남편은 내가 항상 우선이었구나.' 이제야 느낀다. 내가 지금 이렇게 공부도 하고 글쓰기도 하고 상담도 할 수 있는 건 그 덕분이다.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현재로 느끼며 살아가는 건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공부할 수 있게 스스로를 찾아갈 수 있게 지지해 주었다. 나는 그의 표현들이 거칠다고 투정을 부렸던 것이다. 그 깊은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오늘 상담실 출근길에 '나에게 두 아이가 없었더라면?' 질문을 던졌다. 답은 '상상할 수도 없다.'였다. 그가 없다면 두 아이도 없다. 그렇다면 '나'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당연히 주어지는 건 없다. 유지하려면 노력해야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받은 만큼 그에게 돌려줄 수 있을까. 그건 뒤에 생각하기로 하자. 일단은 남편이 뭘 좋아하는지 관찰하려 한다. 관심을 가지고 말이다.




사진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Vinson Tan ( 楊 祖 武 )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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