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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Jan 08. 2024

함께 집정리

남편과 함께 집정리한 경험에 대한 기록

2024.1.8 월


"네 시즈음 갈게."

남편의 전화였다. 마음이 바빠졌다. 1월 한 달 동안 집정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작년 1월 이사 이후 물건들이 제자리를 못 찾은 경우도 있다. 연말에 동생집에 갔다 오니 정리된 집이 얼마나 좋은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집에 돌아와서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대청소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12월 초에 둘째 방을 남편방으로 만들어주었다. 그 방을 초등학교 4학년 둘째 짐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 남편 침대만 들어간 것이다. 물건들이 어지럽게 쌓여있었다. 2박 3일 집을 비운 남편이 귀가하기 전에 그 방은 정리하려고 했다. 정리를 시작하다 보니, 둘째 옷정리부터 하게 되고, 그다음 내 옷장정리 이렇게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남편방은 정리를 시작도 못한 채, 오후 4시가 되어버렸다.


어린 왕자에서 오후 4시와 3시는 상대를 만나기 전 셀렘을 표현한 시간들이었다면, 어제 나에게 오후 4시는 불안함이 증폭되는 우왕좌왕의 시간이었다. '남편이 오기 전에 정리를 했어야 했는데' 후회하기도 하고 '그래도 옷장은 정리를 하지 않았나' 스스로에게 위로를 하기도 했다. '슈퍼비전 보고서도 쓰면서 금요일 저녁 3시간 그룹수비도 받으면서 이 이 정도는 잘한 거지.'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결국 오후 4시가 되었고 남편은 도착했다.


"같이 하자."

남편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2008년 결혼 한 이후, 2015년, 2019년, 2021년, 2023년 총 5회가량 이사했다. 정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참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자라는 동안 깔끔하게 정돈된 환경을 경험하지 못했다. 나름 한다고 하지만, 버거운 영역이었다. 처음에는 남편이 답답해하며 같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 혼자 하고 있었다. 같이 정리하게 되면 싸우게 된다. 남편은 "네가 정리는 못하니까"라고 시작하며 비난 담긴 잔소리를 시작하며 화를 냈다. 나는 그 말들을 담아내기 힘들었다. 과거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온몸이 긴장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청소를 시작했다. 남편은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고 예전처럼 큰소리와 화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나도 그때의 모습들이 아니었다.


나는 남편에게 정리정돈을 배웠다. 일단 베란다와 한편의 짐들을 거실로 다 꺼냈다. 베란다가 거의 창고처럼 쓰이고 있었기에 묵은 짐들이 많았다. 우리 집은 책도 많은 편인데 책장도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다. 일단 책이 정리되고 나니까 깔끔함을 찾았다. 그다음은 긴 멀티탭이 문제였다. 남편은 머릿속에서 테트리스처럼 방을 생각하는 듯했다. 줄자로 몇 번 재더니, 침대를 옮겨버렸다. 그랬더니 딱 맞춤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아늑한 자취방이 하나 완성되었다. 둘째 책상도 정리했다. 연분홍빛 책상에 연필심이 굴러다니면서 자국을 남겼다.

"이런  걸 깨끗하게 해야지. 그다음이 있어. 네가 공부를 하면 뭐 하니, 일상이 어지러운데."

예전에는 이렇게 말을 들으면 억울했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 못하는 부분만 지적한다고 받아들였다. 이제는 남편이 뭐가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걸까 생각해 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어지러운 환경에서 자라나서 나중에도 정리를 힘들어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또 예전에는 '그렇게 잘하면 본인이 하지 왜 나한테 이래.'라는 생각이 컸다. 이제는 남편의 의도가 느껴진다. 내가 성공경험을 하길 바라는 것이다. 정리라는 하나의 분야에 집중해서 작은 성공을 맛보는 걸 원하는 것이다. 그 성공경험이 그다음 깔끔함을 유지하게 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2019년 이사가 생각났다. 원가족과 함께 살 때 부모님 소유의 집에 살고 있어서 나는 이사 경험이 거의 없었다. 처음 이사라는 걸 할 때는 거의 패닉상태였다. 두려움, 불안에 압도당했다. 이제 몇 번 경험하고 나, 나 혼자서도 이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2023년 이사는 남편이 해외 일정이 있어 출국했을 때 혼자 이사를 진행했다. 이번 정리도 그러할 것이다. 이제는 내가 관심을 가지는 영역이 되었다. 예전에는 나의 부족함을 다시 확인하는 영역이라 피하고 싶었다. 지금은 어떤 부분이 안되는지 제대로 들여다보고 개선해나가려고 한다. 시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애쓰는 영역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서 잘해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집안 정리를 하게 되면, 우선 남편과 아이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니 보는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서 집안 어디를 둘러봐도 구석구석 내 마음에 들게 해 놓으면,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나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좋은 걸 선택하기 위한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변화를 위한 노력을 부부가 함께 감정적 충돌 없이 무사히 해낸 날이기에 기록해두려고 한다.

2024년 1월 7일 오후 4시부터 9시, 함께 청소하다.





*남편에게 배운 정리 원칙들

- 생활이 편리하게 배치하라. 불편함 최소화.

- 물건을 쌓아두지 마라.

- 사용하지 않는 건 과감하게 버려라.



*영상으로 배운 정리 원칙들

https://youtu.be/bmfsfTyUURM?si=iE66Jil3EQWnk2wq




*사진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영훈 박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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