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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Jan 15. 2024

산책과 말다툼

다툰 후 화해한 경험에 대한 기록

2024.1.15 월


 주말 아침 남편과 강변으로 산책을 갔다. 대화의 주제는 큰 딸의 기상시각이었다. 현재 예비 고1이다. 오후 1시 30분에 일어난다. 그 아이의 성향인가 보다 생각하면서 한 달을 버텼다. 마음속에서는 '그래도 엄마가 상담을 공부하는 사람인데 아이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내 아이를 앞집 아이처럼, 남처럼 보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이대로 두다가는 '방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야기했다.


 대화의 시작은 '딸아이 기상시각'이었지만, 중간은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감정이 불편한 상황이 되었고, 단어선택이 뾰죡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산책하다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중간 과정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싸움의 포인트가 된 건 '현상학적 장'이라는 단어였다.  아마도 대화 내용 중에 A라는 사람의 내적세계와 B라는 사람의 내적세계가 다르므로 A가 B를 100프로 이해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걸 나는 말하고 싶었다. 남편은 '현상학적'이라는 단어를 한 줄로 정의해 보라고 했다. 나는 설명은 할 수 있지만 정의를 내리기엔 아직 부족하다고 했다. 남편은 그건 네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 부부의 말다툼의 패턴은 이랬었다. 남편은 '말을 했는데 왜 저 사람이 안 하지?' '왜 못 알아듣지?'라는 질문 및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각자 이해 방식이 다르고 살아온 세월이 다른데 무언가를 이야기했을 때 온전히 그 의미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회의감이 든다.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깝다. 일단 입장의 차이가 크다. 


 화가 난 남편은 우리가 걸어온 길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그는 달리기가 빠른 편이다. 나는 키도 작은 편이고 달리기도 느린 편이라 따라잡을 수가 없다. 풍경을 보면서 그가 뛰어간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현상학적 장이라는 단어를 찾아봤다. 덕분에 공부를 하게 되었다. 


출처 : 네이버

현상학적 장 : 개인마다 드러나는 현상은 그들에게는 현실이고, 그것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며, 개인 안에서도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언제나 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지만 각자 다른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이야기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대화를 할 때는 때로는 정확한 뜻을 묻기도 해야 한다. 이해가 될 때까지 말이다. MBTI에서 N(직관형)과 S(감격형)으로 나뉘는 이유도 설명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직관형들은 '사과' 하면 백설공주를 떠올리고(예시일 뿐이다), 감각형들은 '빨갛다', '동그랗디' 등등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사실을 마음속으로 그린다. 남편은 직관형과 감각형이 같이 공존하는 느낌인데,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근거는 '감각형'으로 듣기를 바라고 본인이 말을 할 때는 직관형으로 표현하는 편이다. 나는 직관형이 짙은 사람이다. 설명이 두리뭉실하다. 남편은 항상 그 부분을 지적했다. 이번 대화에서도 그 모호한 표현이라는 돌멩이에 턱 걸려 넘어진 것이다.


 잠시 걷다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우리는 근처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남편은 너무 화가 나서 뛰어갔다고 설명했다. 그 말을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 또한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써서 미안하다고 했다. 남편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었다고 한다. 


 말다툼은 각자 내면에 욕구가 있는데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 일어났다. 우리 부부의 경우는 그랬다. 남편은 정확하게 알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나는 우리 각자는 서로 다르기에 의사소통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다. 검색창에서 '현상학적 장'을 검색해서 남편에게 읽어주었다. 


 남편은 지식을 제대로 습득한다는 것은 텍스트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서 본인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수긍했다. 그 말이 맞았다. 그래서 올해는 더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공부하려면 남편의 말처럼 해야 한다. 제대로 소화시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과거에는 이 패턴에서 큰 싸움으로 번졌다. 생각해 보면 내가 인정하지 않아서였고, 남편이 화를 더 크게 내서였다. 이제는 과거와 다른 선택을 하는 경험을 했다. 우리는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두 아이와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었다. 


갈등이 일어날까 봐 무서웠다. 봉합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다. 의견 차이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고, 상대와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예전과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상대의 탓을 하지 않고 말이다. 이것이 '함께'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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