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탐색기 중간보고
일 년 동안 있었던 일
지난 1년 동안 대학원 2, 3학기가 지났다. 그동안 상담실에서 주 2일 객원 상담사로 근무하며, 학교를 다녔다. 올해 3월부터 논문계획서를 준비해서, 5월에 발표하고 통과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자료 찾고, 논문 계획서를 작성했었다. 7월에 설문 작업을 진행했고, 통계를 시작했다. 교육 분석은 8월에 종료했다. 물론 틈틈이 육아도 했다. 그동안 브런치에 기록하지 못해 아쉽지만, 1년 전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다른지 차이를 확 느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때와 지금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 하나씩 짚어보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가 우선이다. 하지만 지난 학기, 두 아이가 각 성장발달에 맞는 학교에 입학하고, 나는 논문계획서를 쓰는 기간과 맞물리게 되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수습하느라 아이들을 세밀하게 관찰하지 못했다. 3월에는 이사까지 겹쳤다. 둘째가 학교에서 급식시간에 점심을 먹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담임 선생님이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아이가 집에 와서 엄마인 나에게 목욕하며 말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는 지금도 6세 때 다녔던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때 선생님과의 친밀감이 아이에게 중요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때 병설로 옮기지 말고, 계속 다니게 할 걸.'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어떻게 하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아이와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잠들기 전에 아이와 체조를 한다. 유튜브 영상에서 잠들기 전 체조를 찾으면 여러 개가 나오는데, 10분가량 진행되는 영상이다. 매일 비슷한 시간, 같은 체조를 한다. 아이는 은근히 이 시간을 기다리는 듯하다. 요즘는 비대면 시대라 밤 9시에도 스터디, 줌 미팅 있을 수 있지만, 이 시간은 되도록 피한다. 아이와 체조를 하고 유튜브 요리 영상(5분가량)을 하나 본다. 가끔 영상에서 봤던 음식을 해먹기도 한다. 하루 중 이 시간은 온전히 둘째와 함께하는 시간이다.
청소년 자녀도 마찬가지다. 사춘기인 첫째는 뾰족뾰족하다. 최대한 안아주려고 노력한다. 아침에 새벽 스터디를 하고, 첫째를 깨워서 15~20분 정도 아파트 주변을 걷는다. 운이 좋게도, 아파트 바로 뒤에 큰 산이 있어서 아침 풍경을 보면, 마음이 맑아진다. 이 시간을 보낸 날과 아닌 날이 차이가 있다. 가끔은 비와도 나간다.
두 아이와 이렇게 하루에 각각 20분 정도는 함께 하려고 노력 중이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가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 하지만 시간은 한정적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다르다는 걸, 마흔을 지나면서 더 뚜렷하게 깨닫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논문을 계속 진행할지, 마무리할지 선택해야 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9월 둘째 주, 졸업시험을 치고 난 후부터 고민했다. 물론 통계작업은 계속하면서 말이다. 어제 이 부분은 생각이 정리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걸로.
그다음은 '건강'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해도 건강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몇 년 전 몸도 마음도 아팠던 시간들이 지금 이 순간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 순간 깨닫게 해 준다.
매일 걷고, 일정 시간 이상 자고, 매끼 챙겨 먹는 건 나에게 중요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
가족상담 과제를 하다가,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해 놓고 싶어서 브런치에 들어왔다.
오늘 아침, 친한 언니와 통화를 했다. 언니 생일이었다. 축하를 전하며 선물을 물었더니 언니가 말한다.
"나 받고 싶은 선물이 있어. 나랑 만나서 지내면서, 좋았던 걸 한 문장으로 보내줘요."
생각해보니, 언니랑 만나면서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 듯하다. 비폭력대화를 같이 배웠던 동료이기도 하고, 연습모임을 같이 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오늘, 살고 있는 걸 깨닫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마음도 든다.
지금 이 순간, Pres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