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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Aug 07. 2022

그 후로 열 달

마흔 하고도 하나,

픽사베이, 무료이지미 사용

'나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물고기였다'



마침표, 하나

 마흔 살 탐색기 중간보고 글 이후 또 열 달이 지났다. 현재 2022년 8월로 학교도서관에 논문을 최종 제출하였다. 졸업예정자이다. 한 학기는 석사 수료생 신분이었으며, 인생 경험들을 추가하였다. 중간에 초등학교 상담실 임시 상담교사로 지원했다가 떨어진 경험, 국립대학교 대학본부에서 보고서를 쓰는 일을 하는 계약직 대학교 직원으로 석 달 일을 한 경험이 추가되었다. 당시 논문 심사일정과 보고서 제출 일정이 겹쳐서, 최근 몇 년 중 가장 바쁜 두 달을 보내기도 하였다. 새벽 시간에는 논문을 쓰고, 출근해서 일하고  저녁에 다시 논문을 썼다. 그동안 아이들은 거의 스스로 자라고 있었다. 

(엄마 퇴근 전까지, 둘이서 밥을 차려먹기도 하고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널었으며, 먼저 잠들기도 하였다. 어떻게 하루하루 사는지 이야기도 거의 나누지 못했다.)


항상성

오늘 마흔 살 탐색기 처음부터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한 단어가 떠올랐다. 바로 항상성이다.

'사람은 기존에 자신의 삶의 패턴을 유지하려고 한다.'

가족상담에 대해 배울 때 첫 장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하고, 어제 읽은 책 <마스터리>에서도 나온 내용이다.


나는 여전히 성급하게 결정하고자 하는 경향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고 입사했다. 계약기간인 내년 2월까지는 때려죽여도(?) 다녀야지 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뭔가가 있었지만, 꾹 버텼다. 나는 예전과 다르게 행동한다고 착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고, 마음먹은 지 일주일도 안되어서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정신 차려보니 집이었다. 마지막 출근날, 혼자 점심을 먹고 학교 캠퍼스를 산책하며 문자로 선생님께 상담 신청을 하였다. 퇴사 삼 일 후, 나의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다.


상담과 다른 분야에 입사하는 걸 누구보다도 지지해주신 분이었다. 또한 논문 심사과정에서 우리 과 교수님들께도 나의 입사 사실을 알렸고, 논문의 내용을 지적받을 때마다 9 to 6 출근한다는 이유로 절대 시간 부족이라는 핑계를 댔다. 계약 만료까지는 퇴사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에 여기저기 입사 사실을 알리고 다녔다. 하지만 결국 퇴사했다. 선생님은 그동안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버티지 않고 퇴사를 결정한 걸 축하해주셨다. 그렇지만 다음 말은 나에게 의미심장했다.

"혹시 다음번에도 혹시 이런 일이 있다면, 퇴사 전에 상담을 먼저 신청하세요."

어떤 의미인지는 상담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상대에게 나의 지금 상황을 얼마만큼 전달했는가'에 대해 깨닫게 해주시려고 하셨던 거였다. 나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상대방에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묵묵히 버티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게 되면 결단을 내리고 선택을 한다. 상대방에게는 정말 당황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다. 내가 상대에게 내 상황이 어떤지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이만큼 표현하면 상대가 알아차렸겠지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요구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변화를 바라고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일이 힘들어서라기 보다 내 삶에 의사소통 패턴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퇴사한 거였다. 결혼생활에서도 그랬었다. 남편이 내 상황을 그대로 알아봐 주기를 바랐다. 내가 표현하지 않아도 말이다. 상대는 내가 표현한 것만큼만, 아니 그것보다 훨씬 적게 나에 대해서 알고 있을 뿐이다. 


1회기 50분 상담시간 동안 3개월 회사 생활에 대해 애도의 과정을 거쳤다. 나에게 어떤 의미였나 정리해서 마침표를 찍었다. 완전히 깔끔하지는 않겠지만.


마침표, 둘

 일상을 가득 채우려고 하는 경향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갑자기 늘어났다. 그 시간을 또 가득 채우고 싶어졌다. 퇴사하자마자 평소 듣고 싶었던 코치 수업에 등록하였고, 상담학회 연차 학술대회를 신청했다. 늦게 신청한 터라 원하는 세미나는 마감되었다. 남아있는 것 중에 끌리듯 듣게 된 세미나가 있다. '학술지 논문 투고하기'였는데, 석사 논문도 끝냈고 학회지에 투고도 하지 않기도 마음먹은 내가 이 수업을 왜 신청했는지 스스로에게도 의문이 들었다.


 세 시간 강의를 꽉 차게 듣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이 강의를 왜 신청했는지. 세미나를 진행하신 고홍월 교수님은 부제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연구에 대한 두려움을 옅어지게 하기 위한 강의>라고. 지난 일 년 반 동안 석사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그 시간에 대한 애도의 시간이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 나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교수님들도 아직도 힘들어하는 것이 '논문 쓰기'였다. 당연히 힘든 것을 나만 힘든 거라고 착각하는 순간 안개의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되는 거였다. 나는 시작하기 전에 두려움이 큰 사람이다. 고홍월 교수님은 '연구에 대한 두려움, 거부감이 얼마만큼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세미나를 시작하였다.  '바로 그 부분이었다!' 여담으로 MBTI유형 중 J 경향이 강할수록 논문 쓰는 과정을 더 힘들어한다는 말씀도 하셨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이었다. 교수님께서 그 질문을 하신 이유는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두려움과 거부감이 크면 과정에서 자기 효능감이 떨어진다는 걸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확실히 그랬다. 논문을 쓰면서 자는 작아지고 또 작아졌다.


불확실함과 모호함은 견디는 것이 특히나 더 어려운 나는 논문을 쓰는 과정이 힘들었다. 마흔 살 탐색기의 두 번째 글도 '모호함을 견디는 힘'이다. 내가 일상을 가득 채우려고 하는 이유도 그렇다. 하루 중 모호한 시간을 견디기 힘들기에 해야 할 일들로 채우려는 것이다. 이러한 매일의 경향성들이 쌓여서 삶의 패턴이 되는 거였다.

그렇게 모호함이 힘들어 더 많은 일들로 채우려 했다. 이러한 경향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졌다.




다음 글 : 마흔살 탐색기 마지막 글, 나에게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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