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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Jan 25. 2024

소소한 행복

혼자 즐기는 점심시간

2024.1.25 목



 2023년에는 주 1회 상담센터에 출근했다. 1년 계약으로 2월부터 시작해서 다음 해 1월까지 근무한다. 1월은 근무하는 분들끼리 돌아가며 휴가를 쓰는 달이라서 마지막 근무인 선생님도 있었다. 23년 동안은 점심시간 동안 거의 같이 밥을 먹었다. 함께 하는 것이 좋기도 했다. 한동안은 점심시간을 기다릴 만큼 말이다. 요즘은 함께 있으면 에너지가 든다. 나의 에너지가 100이라면 70-80을 집에서 쓴다. 밖에서 쓸 에너지가 한정적이다.


 센터에 출근하면 상담에만 전념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마침 이번 점심은 혼자 먹게 되었다.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나는 전날부터 두근두근했다. 나를 데리고 뭘 맛있는 걸 먹을까 고민했다. 주변에 유명한 복국집이 있었다. 근무하는 내내 가고 싶었지만, 함께하는 분들에게 복국은 낯선 음식일 수도 있으니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금액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복국은 내 최애음식이다. 우울하다 싶으면 먹고 힘내는 메뉴이기도 하다. 고등학생 때부터 맛들이기 시작했다. 아버지 덕분에 좋아하게 되었고, 현재도 즐기고 있으며 우리 아이들도 좋아한다. 돌아가신 시아버지께서 나에게 처음 사주신 음식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은복을 파는 곳도 많았는데, 요즘은 참복이나 까치복이 더 많이 보인다.


메뉴판을 보며 고민하다가 까치복으로 주문했다. 오래된 음식점이라 주 이용 연령층이 연세가 있는 분들이었고, 둘셋 혹은 넷이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혼자서 먹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2층 중간 자리였다. 예전에 나라면 어땠을까. 주변 눈치가 보였을 수도 있겠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들고 간 책을 꺼냈다. 아니 에르노의 '사건'은 겨울 외투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큼 작은 책이었다. 틈틈이 읽기 좋았다. 작가일지 주인공인지 모를 등장인물의 심경이 어땠을지 가만히 생각하는 동안 밑반찬이 나왔다.



 화요일 점심 그날은, 음식 하나하나를 음미했다. 밑반찬으로 복튀김도 나왔다. 귀에 이어폰도 꽂고 있지 않아서 바사삭 소리가 귀로 들렸다. 이곳은 다른 복국집보다 콩나물이 특히 많았다. 또 특이한 점은 냄비에 국을 끓여서 나와서 손님 테이블 옆에서 다시 국그릇에 담아주었다. 금수복국이나 일광복국은 뚝배기에 담아서 나왔었다. 복껍질무침도 맛있었고. 여러 가지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그런데 어쩌나, 가방 안에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전날 저녁 다른 외투에 지갑을 넣어두고 그냥 온 것이 아닌가. '계좌이체 하면 되지~' 다시 마음이 편안해졌다. 음식점에서 걸어 나와서 근처 테이크아웃 카페에 들러 '카페 더 해운대'를 주문했다. 051이라는 카페 시그니쳐메뉴이다. 기다리는 동안 또 아니 에르노의 책. 천천히 걸어서 센터로 돌아왔다. 좋아하는 길로 둘러오며 친한 언니와 통화도 하고.



행복이 별거 있나 싶었다. 나와 오롯이 대화를 나누며, 좋아하는 걸 하며, 소소하게 즐거운 점심시간.


꼭 기록해두고 싶어 브런치를 펼쳤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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