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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Mar 05. 2024

들어주는 사람

일상 대화와 상담 대화 경계선

2024.3.5 화


프리랜서로 살아간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거실창으로 빗물이 보인다. 오늘 스케줄은 만들어가기 나름이다. 앞으로 이렇게 여유로운 날이 있을까. 마음은 바쁘지만, 몸은 여유가 있는 날이다. 음악을 한곡 들으면서 식탁 위에 남은 사과를 바라본다. '먹을까 말까' 새 사과를 깎으려다, 남은 사과를 입에 넣었다. 이 상태로 집에 있다간, 아무것도 못할 거 같은 두려움이 몰려온다. 이럴 때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애정하는 카페에 도착했다. 드립커피를 한잔 받아서 자리에 앉았더니 전화가 울린다. 상담동료 선생님이다. 얼마 전에 우리는 공개사례발표를 끝냈다. 수련하는 학회에 보고서를 올려야 한다. 수요일에 공개사례발표를 마치고 금요일에 작성해서 올렸는데, 날아가버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 이후 2주가 지났다. 참가자 명단을 보고 한 명씩 찾아서 다시 등록할 시간이 필요했고, 결정적으로 다시 할 힘이 나지 않았다. 미루는 나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 선생님은 등록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전화가 울렸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나의 텔레파시를 받나 싶을 때가 있다.)


학회 보고서 등록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또 다른 이야기로 흘렀다. 상담사들은 각자 좋아하는 이론에 따라서 각자 공부를 해나간다. 이 선생님은 게슈탈트 이론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트라우마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어제 들은 수업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다. '종결과 관련한 어려움'이었다. 어떤 일을 하게 되면 마무리가 어렵다고 했다.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었다.


어떤 일은 이래서 힘들었고, 또 다른 건 이래서 마무리가 힘들고요..


이렇게 이어졌다. 이 분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관찰되는 부분이 있었다. 처음에는 상대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패턴이 보일 때가 있다. 계속 볼 지인이라면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면 내가 느낀 부분을 전달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 선생님과는 일 년 넘게 인연을 지속하고 있고, 집단상담에 같이 참여한 적도 있다. 어느 정도 정서적 친밀감을 쌓은 상태이다. 처음에는 상대가 어떠한지 모르기에 말할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쌓이고, 어느 정도 알게 되면 대화가 더 깊어진다.


오늘도 듣다가 반복되는 부분이 발견돼서 그 내용을 전달했다.

그랬더니 교육분석에서도 선생님과 다루었던 부분이라고 했다. 


"선생님과 대화하면서 느끼는 건데 가끔 이렇게 짚어주시는 부분이 나를 돌아보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또 전화하고 싶어요."


감사한 마음이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다는 것이,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어제 오후, 두 건의 상담이 있었다. 상담자로서는 또 다른 듣기를 한다. 내담자의 반대편 앞에서 그들의 언어를 온전히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말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다시 돌려주거나, 묻기도 한다. 함께 머물러주려고 애쓴다.


일상의 대화와 상담의 대화를 분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일상에서 내 언어와

상담에서 나의 언어, 그 스타일을 찾아가는 중이다.





세상에 나로서 존재하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말하는 걸 더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듣는 것도 즐거워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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