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일기 #1. 길에서 만난 식물들, 그리고 이야기
이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었는데 이런 풍경은 처음 마주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봄부터 자기 자리를 지켜오던 식물들이 누워있었다. 뿌리를 드러내고 누워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보통 금계국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길쭉한 잎이 촘촘히 있어서 풍성해 보인다.
땅 쪽 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본 건 처음이다. 마치 납작한 종이에 붙어 있는 채집된 식물표본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것과 다른 점은 이 아이는 살아있었다.
거 센물 줄기가 강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가물었을 때도 강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이 색이 아니었다. 자신을 보호할 만큼의 바닥에 흙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모든 것을 걷어내고 바닥 모습 그대로가 드러난 것 같았다. 태풍이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산책로에 가로등도 두 개 쓰러져있었다. 바닥에 고정하기 위해 부은 콘크리트가 그대로 뽑힌 채로 누워있었다.
내가 걷는 산책로는 길을 중심으로 한쪽은 강이고 한쪽은 산이다. 강 쪽의 사정은 그랬다. 산 쪽을 보니, 닭의 장풀 꽃이 파랗게 피어있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풍성하게 자라난 듯 보였다. 평소에는 바위틈에서 자라는 게 힘겨워 보였는데 태풍 덕분에 바위가 물을 머금게 되고 식물이 자라기에 더 좋은 환경이 되었다.
한 여름에 풍성함을 자랑하던 평지 쪽 초록이들은 누워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 자랄까 힘겨워 보이던 초록이들은 위기를 기회 삼아 더 빠른 생장을 보이고 있었다.
인생 초반기, 10대에서 30대 초반까지. 난 인생의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는 시절이 있었다. 다른 이들은 평지를 걸어가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싶었다. 지나간 시간으로 돌아가 과거의 나를 탓하기도 하고 환경과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오늘 산책로에서 만난 금계국과 닭의 장풀을 보면서 느꼈다. 어쩌면 위기를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걸.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삶을 바위 위에 자리 잡은 덕분에 뿌리를 더 단단히 내리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이 시간들은 온전히 견뎌내고 나면, 바위에서도 안전해지는 날이, 풍성해지는 날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