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니아

길에서 만나다, 태양닮은 가자니아

by 스타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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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니아. 이 아이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갑자기 생긴 약속이었다. 약속시간 10분 남겨두고, 주민센터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갑자기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일이 생각났다. ‘몇 분 안 걸릴 텐데.’ 생각하며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대기자가 없어서 금방 발급받았다. 미뤄둔 일을 해결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햇볕이 강렬해서 눈이 부셨다. 고개를 돌리니 화단에 꽃이 보였다. 다음 검색으로 찾아보니, 가자니아였다. 남아프리카 원산지 식물이다. 국화과 식물이다. 남아프리카에서 고도가 낮은 모래 지역에 고산 초원지대까지 널리 서식한다고 한다. 태양을 닮았다.


대학교 2학년 그 무렵에 태양은 공원이었다.

광역시에 있는 공원으로 현장학습을 갔다. 그 당시에는 3.3㎡를 1평이라고 쓰던 시절이었다. 110만 평 공원이 남쪽에서는 흔치 않았다. 1차 지역만 오픈한 상태였다. 그 넓은 공원에 입장료도 없었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공간에서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기시험 치는 날, 아버지 차를 타고 이동했다. 와이퍼가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다. 뒷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무슨 문제가 나올지 몰라서 대학교 때 교재를 읽었다.

아버지 덕분에 안전하게 고사장에 도착했다. 파트별로 다른 교실에서 쳤다. 도착하고 보니 아는 얼굴도 있었다. 2명 뽑는데, 필기시험 통과자는 2명이었다. 다행히 안심하고 면접을 봐도 되었다. 아주 큰 일만 내지 않으면 합격할 거 같은 분위기였다.

태양처럼 강렬했던 그 공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공원에 가면 즐거울 줄 알았다. 행복할 줄 알았다. 멀리서 보는 풍경과 가까이서 마주하는 현실은 달랐다.


공원 여러 구역 내에 장미원이 있었다. 처음에는 장미만 보였다. 94종 정도 되었다. 각각 다른 아름다움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보고 또 보았다. 관리되는 내용을 기록해야 했기에 일정 시간 텀을 두고 사진을 찍었다. 매일 보니 어디에 무슨 장미가 있는지 외울 지경이 되었다. 그러니 다른 게 보였다. 어떤 장미에 이상이 왔고, 근처에 고라니가 내려와서 새순을 먹은 구역, 검은 무늬병이 온 구역, 배수가 잘되지 않아서 습한 지역 등등 관리 대상인 구역이 더 눈에 들어왔다. 좋은 것보다는 일할 대상만 보였다.


학생 때 상상 속에는 막연히 공원에서 일하면 좋겠다 싶었다. 매일 2시간 걸려서 출근했다. 도착해서 넓은 공원을 걸어 다녔다. 공원 관리 전기 차량이 있지만, 관리인력보다 턱없이 부족해서 걸어가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한여름에 시원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현장으로 가기 위해 문을 열면, 숨이 턱 막혔다. 여름 햇볕을 온전히 온몸으로 받아야 했다. 모자를 쓰는 것도 선글라스도 눈치를 봐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 일어나는 많은 일에 비하면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때는 힘들었다. 내가 상상했던 회사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관리업무가 주요 업무다 보니 아이디어를 내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태풍 대비해서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 중요했고, 추위가 오면 겨울 초화류가 얼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를 잘 몰랐었다.

이상적인 직업과 회사를 상상했다. 그 안에 있는 내 모습만 생각했지,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고 어떤 업무에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지 몰랐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을 그토록 한순간에 내려놓고 나온 건, 내 상상과 현실에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가자니아 꽃은 강렬한 태양, 모래 지역, 고산 초원지대가 아니라 사람들이 오가는 주민센터 앞 화단에서 자라게 될 줄 알았을까. 가뭄에 강해서 건조한 토양에서 잘 자라는데, 상대적으로 여름의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는 약한다고 한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긴 장마였다. 오늘 마주한 꽃은 피어나기 힘든 환경을 버티고 기다려서 피어났다. 그래서 꽃들이 풍성하지 않았다. 예전에 만났던 가자니아들은 화단을 빼곡히 메울 정도로 친밀하게 자라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다되었는데, 가자니아를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제는 아프리카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지역에 귀화해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지중해, 미국 캘리포니아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찾아다녔던 건 아닐까.


회사를 그만두고 여러 가지 일에 도전했다. 우선 사서교육원부터 들어갔다. 도서관은 나에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교 도서관에 실습을 나가게 되면서 사서 교사를 꿈꾸기도 했다. 결혼에 관심이 생겨 웨딩플래너를 하기도 했고, 강의가 맞을까 싶어서 산업강사 양성과정 수료하기도 했다. 아내이자 주부로 두 아이를 키우며 SNS 기자단, 출판사 서평단, 육아카페 엄마 칼럼니스트, EBS 스토리 기자단 등 내가 적응할 수 있는 토양처럼 보이는 곳을 찾아다녔다. 결과적으로 한 분야를 오래 파진 못했다. 그래서 많이 떠돌아다녔다. 매 순간 가슴 뛰는 일을 찾았다. 꿈에 그리던 직장을 그만두고, 10년을 찾아 헤매었다.


엄마가 걱정하셨다.

"그러지 말고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해."

고민하다가 지방시설관리공단 4년 전 신입 공채에 지원했다. 필기시험은 통과했고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갓 졸업한 이십 대 중반 지원자들과 아이 엄마 지원자, 회사의 선택은 그러했다. 현실이었다. 경력단절 여성이다. 사람들은 그랬다.

"그러게, 정년 보장되는 직장에서 왜 나왔어."

그 회사 최종면접에서 합격했다면, 어땠을까. 지금 둘째 아이를 만나지 못했을 거다. 아마도 내 생애 아이는 한 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삶이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했겠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지 깨닫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두 아이가 잠들었다.

스물다섯 그 해 첫 직장에 입사했을 무렵, 십수 년 뒤에 내가 경력 단절녀가 될지 몰랐다. 정년까지 그 회사 다닐 줄 알았지. 하루하루 살아내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몇 년 전, 친정 부모님이 찾아오셨다.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가 이사에 관해 물으신다. 아직 집도 없는 큰 딸이 걱정이시다. 엄마한테 그랬다.


"엄마, 내 건 아니지만, 비 피할 때 있고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이 시원하고 아이 둘이랑 남편이랑 지낼 수 있어 행복해. 난 그 모든 것이 없었을 때도 있었잖아.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어."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앞으로 십 년, 내 삶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 뿐이다. 습한 장마를 견뎌낸 가자니아 꽃처럼 말이다.


꿈에 그리던 직장은 그야말로 내 마음속에 있었다.

누군가에 눈에 좋아 보이는 곳, 정년이 보장되고 먹고살기에 지장 없는 곳이 꿈에 직장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월급통장은 잃었지만 나를 찾게 되었다. 남들 눈에 강렬한 꽃이 아니라 나만의 색을 찾게 되었다. 십 년 넘게 나에게 맞는 토양을 찾아 헤맸다. 온전히 내 색깔을 갖게 되어 다행이다.


오늘 만난 가자니아 꽃은 하얀색이었다. 다음번에는 무슨 색을 만나게 될까 궁금해진다.

온전히 자신으로 피어나는 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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