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열무가 자라는 이유

상황을 알고 나면 이해되는 경우가 있다.

by 스타티스
"여기에 왜 있지?"
"분명히 열무 같은데?"


사람이 걷는 길이다. 보도블록과 벽 사이 틈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것도 잎이 무성하게 말이다. 어떻게 여기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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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만난 열무 앞에 앉았다. 식물은 내려다볼 때와 앉아서 그들의 높이에 맞춰서 볼 때 다르게 느껴진다. 높이를 낮추어 보니 꽤 무성하게 자랐다. 그리고 한 포기가 아니라 줄지어 자라고 있었다. 열무들이 여기로 이사 와서 주택단지를 만든 느낌이다. 마치 강아지풀들처럼 길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잎을 뻗어내고 있었다.


밭에서 만나는 열무와 느낌이 다르다. 당연히 그곳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탈출한 느낌이다. 열무는 뿌리가 제법 통통하게 자라는 초록이인데, 여기서 자기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참, 여긴 초등학교 앞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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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다보았다. 학교 내부 구조가 떠올랐다. 교문 입구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보도와 같은 높이다. 하지만 점점 단 차이가 난다. 학교는 편평한데, 길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다. 열무가 자라는 이 즈음까지 오면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 학교가 있다. 학교 담장에서는 찔레꽃과 호박 덩굴이 아래쪽으로 자라나 있다. 그 위에는 여름 내 분홍꽃을 피워낸 자귀나무가 보인다. 겨울에는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있었는데, 벌써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그 자귀나무 아래에 5학년 학생들이 가꾸는 텃밭이 있었다.

아이도 작년에 그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를 집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올해는 열무를 심었었나?"


생각해 보니, 코로나 19로 인해 아이들이 거의 학교를 가지 못했고, 지금도 3주에 한 주 등교하는 중이다. 텃밭을 가꿀 시간이 있었을까? 작년에도 이 길을 다녔는데, 길에서 열무를 보지 못했다. 내 기억엔 여기서 봄에는 봄까치꽃을, 여름 즈음에는 광대나물 꽃을 만났었는데.


'아, 최근 몇 주 동안 두 번의 큰 태풍이 지나갔구나.'

지지난번 태풍은 무사히 지나갔었는데, 최근 태풍은 우리 동네를 휩쓸었다. 6차선 도로가 사람 허리 위 정도까지 잠기고, 출근시간에 차들이 침수되어서 꽉 막히기도 했다. 그때 학교 텃밭에 흙들이 흘러내렸을 것이다. 낮은 곳으로, 물이 흘러가는 길을 따라갔을 것이다. 밭에서 있던 씨앗들이 길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랬구나."


하긴 사람도 그렇다. 도대체 저 사람이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간혹 어쩌다 그분의 성장 배경이나 현재 처한 상황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이해가 된다. 왜 그랬었는지.




상황을 알고 나면 이해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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