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지니 보이는 것들

인생에서 큰 일은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by 스타티스
태풍에 가로등이 쓰러졌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한여름에 그 시간대는 훤했다. 앞사람 얼굴도 자세히 보이고 몇 미터 앞에 길도 잘 보였다. 가을이 훌쩍 다가왔는데, 남은 여름 자락이 있겠지 생각하며 강변 산책길로 걸어갔다. 이미 어두웠다. 내 발 앞에 돌멩이도 보이지 않았다. 횡단보도 불빛은 눈부실 정도로 밝았기에, 안전하게 건넜다. 문제는 강변 산책로였다. 태풍에 가로등 두 개가 쓰러졌는데,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낮에는 그것만 고장 난 줄 알았다. 오늘 현장에 가보니 그 길 가로등 전부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에는 밤이라도 안전감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오늘은 걸어가면 갈수록 무서워졌다. 횡단보도 쪽 불빛과 멀어질수록 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산책로에 가면 꼭 인사를 하고 오는 나무가 있다. 사실 산책을 가는 이유는 이 나무를 만나기 위함도 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은 그 나무에게 인사만 하고 오자.' 집을 나서서 그 나무까지 갔다 오면 딱 30분이다. 나는 살기 위해 최소한 운동을 한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 몸부림이다. 나에게 그 나무는 생명의 나무이기도 하다. 나무를 만나서 마음속으로 오늘도 잘 지냈는지 안부를 묻고, 돌아섰다.


나의 생명나무
돌아서서 마주한 풍경


하늘에 달이 보였다. '내가 이 길에서 이렇게 선명하게 달을 본 적 있었나?' 이 마을에서 살게 된 건 7년 차이고, 이 길을 걸은 건 2년 다되어간다. 눈 앞에 초승달은 사진 속 달보다 더 선명했다.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풍경보다 달이 선명하게 나오지 않았다. 가로등이 고장 난 덕분에 물 위에 비친 우리 마을 풍경과 어우러진 달을 만나게 되었다. 걸음을 멈추었다. 달을 보고, 머리 위의 하늘도 올려다보았다. 별이 보일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한 두 개 보였다. 몇 분동 안 보고 있으니, 수많은 별들이 점점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밝았을 때도 이 달과 별들은 있었을 거다. 고장 나서 어두워지니,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문득 짙은 어둠을 만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가로등이 고장 난 덕분이다. 큰 태풍이 지나가서 가로등이 쓰러진 건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 처음에 어두운 산책로를 마주했을 때는 두려움 마음만 크게 느껴졌다. 돌아서서 오는 길에는 달과 별을 만났다. 분명 같은 길이다. 변한 건 내 마음뿐이었다.


꺼진 가로등 덕분에 마주한 풍경


마흔을 석 달 앞두었다. 낮에 두 번째 만난 상담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인생의 중반기에 들어섰다고 봐야겠지요." 첫 번째 시간에는 삶의 큰 일들을 나누었고, 오늘은 가족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다시금 여러 일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가로등이 꺼진 어두운 길을 걷는 느낌과 비슷한 두려움과 마주한 시간들이었다. 내 발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떨면서 걸었던 시간도 있었다. 그때는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도 없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밝고 평탄해 보이는데, 유독 내 길만 이런가 하늘을 탓했을 때도 있었다.


오늘 달과 별을 마주하며, 문득 깨닫게 되었다.



짙은 어둠은 소중한 것을 더 밝게 해 준다는 걸.


어쩌면

인생의 큰 일들은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인생에서 큰 일은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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