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차이
2025.5.2 금
예전부터 SNS를 좋아한 편이었다. 싸이월드 때는 소소하게 내 일상을 창고에 보관하는 느낌이었다면, 네이버 블로그는 20대에 시작해서 아직도 내 일상과 함께 하고 있다.
대학교 1학년 때였나? 친구와 극장에 갔다가 네이버 광고를 보게 되었다. 집에 가서 바로 가입했다. 당시 다음 메일은 이용자가 많아서 내가 원하는 아이디로 등록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네이버는 초창기 가입자이다. 나를 나타낼 수 있는 단어로 아이디를 만들었다. 그 알파벳 조합을 참 좋아한다.
네이버 블로그는 나에게 다락방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쌓아두기도 하고, 일상을 기록하기도 한다. 책을 읽고 남기다가 여러 출판사 초창기 리뷰단으로 활동도 했다. 소담 출판사, 푸른숲 등등, 인터파크 뮤직마스터 활동 기억도 소중하고(앨범을 듣고 소감을 올려주는 활동), 위메프 초창기 리뷰단이기도 했다. 내 삶의 기억들이 많이 저장된 인터넷 공간이다. 파워블로거는 되지 못했지만,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덕분에 미스터리 쇼퍼도 했었고, 웨딩플래너 활동 당시에도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 잡았다. 블로그 보고 찾아와서 계약으로 이어지기도 했었다. 나에게는 친정 같은 곳이랄까. 힘들 때 의지하고, 털어놓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가끔 들러 일상 기록을 남긴다.
브런치 광고를 처음 봤을 때는 이상형을 만난 느낌이었다. 두근두근하고, 만나고 싶고, 그래서 신청했다. 하지만 개설하고 몇 년을 쓰지 못했다. 그 연인은 나보다 훨씬 가치가 높아서 왠지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내 모습 그대로 다가가지 못하고, 뭔가 만들어진, 완성된 ‘나‘로 만나야 할 거 같은 무게감이 컸다. 결국 몇 년을 쓰지 못했다. 지금은 함께 쓰는 작가님들 (몹시 쓸모 있는 글쓰기의 알레작가님, 함께 쓰는 몹글 작가님들) 덕분에 편하게 쓴다. 툭 내어놓듯이 말을 건다.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내 마음의 문제였다.
단지 인터넷 공간일 뿐인데,
어떻게 대하는가는 내 마음먹기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그 중간즈음 인스타그램이 있다. 2013년인가? 시작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인지 편하게 ‘지금 이 순간’을 남길 수 있는 구성이 좋았다. 블로그는 사진을 올릴 수 있지만 글도 그만큼 적어야 하고, 브런치는 글에 더 집중해야 하는 공간이라면, 인스타그램은 사진도 올리고 글도 짧게 남길 수 있는 스낵 같은 공간이다. (나에게 블로그는 집밥, 브런치는 레스토랑 느낌이었더랬다. )
며칠 전에도 인스타그램에 글을 남겼다. 그런데 친구가 조심스레 알려주었다.
강의 의뢰해 주신 선생님과 한참 이야기하고 두 시간 넘게 머물렀 던 강의실을 떠났다. 여러 가지 질문들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말씀 도. "또 뵈요"
“네, 또 뵈요, 선생님“
‘뵈요.’가 아니라 ‘봬요.’가 맞는 표현이라고.
‘순간 두 가지 표현 다 쓰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챗GPT한테 물어봤다. 명백했다. ‘봬요’가 맞는 표현이었다.
순간 기분이 조금 나빴다.
당시에는 왜 기분이 그런지 알지 못했다.
하루가 지나니까 알 거 같다. (나는 쫌 느린 편이라 그 순간에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난 나에게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당시에 나에게 스쳐 지나간 생각들이 뭘까 떠올려봤다.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야! 너 글쓰기 좋아한다더니, 그것도 몰랐어?!’
‘이렇게 지적받아야지 알아차리는 거야?’
‘인스타그램이라고 마음 편하게 쓴 거지? 왜 미리 맞춤법 검사 안 한 거야!‘
‘이렇게 지적 안 받게 철저하게 했어야지!!‘
‘그렇게 수십 년을 글을 써도, 고작 이런 맞춤법도 몰랐던 거야? 너 정말 대강하는구나!’
이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당시의 기분 나쁨은 상대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느끼는 감정이었다.
예전에 나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마음이 상했을 거 같다. 지금은 시간을 두고 내 마음을 지켜본다. 그냥 둔다. 사실 뭔가 분석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이렇게 떠오르면, 이해가 된다.
‘그랬구나!’
나의 모습 그대로를 알아차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즐거움이다.
과거 브런치에 바로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와 비슷하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나’와 내가 느끼고 있는 ‘못난 나’의 간극이 크다고 느껴져서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예전에는 그 차이가 참 컸다. 그래서 누군가 지적하면 ‘수치심’이 강하게 올라왔다. 지금은 그 거리감이 확 줄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없는 건 아니다. 여전히 ‘보이고 싶은 나’는 완벽함을 추구한다. 요즘은 ‘자연스러운 나’가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려 노력 중이다. 그렇지만 여러 모습의 ‘나’가 있다는 것도 인정해 준다.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나’
‘못난 나’
이 둘 사이에서 조율하며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나’
결국 인스타그램 글은 수정했다.
‘뵈어요’와 ‘봬요’로 말이다.
덕분에 ‘마음속 목소리’와 나도 모르는 사이 또다시 활동하는 ‘못난 나’도 마주 했다.
주변이 고요하니, 이렇게 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구나!
한 끗 차이도 발견할 수 있는 이 연휴의 고요함.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