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23 금
oo대학교 학생상담센터
이곳을 참 좋아한다. ‘왜 그럴까?’ 문득 생각해본다. 지금 이 순간, oo대학교 학생상담센터 집단상담실에 앉아 있다. 일반 상담실보다 크다. 두 면에는 창문이 길쭉하게 있어서 바깥 풍경이 그대로 보인다. 초록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생중계된다. 다른 한 면은 전면 유리라서 바깥 건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건물 안이지만 개방감이 있어서 답답하지 않다. 그래서 이 곳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곳 사람들도 참 좋다.
2020년부터 만나 뵙고 있는 주슈퍼바이저 선생님. 오늘 아침, 자연스럽게 말을 거신다.
“선생님은 눈이 좋은가 봐요. 화면이 점점 작아지고 있어. 노트북을 쓰더니, 아이패드 미니를 쓰더니,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하고 있네.”
오늘은 깜빡하고 노트북을 두고 왔다. 무선 키보드와 아이폰을 연결해 메모장에 기록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하신 말씀이다. 오랜 관찰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말. 말에서 온도가 느껴진다. 36.5도.
아직도 글자가 잘 보여서 다행이라고 답했다. 노안이 오기 전에 박사 졸업하는 게 꿈이라고.
선생님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곧, 조만간 한글 11포인트 이하 글자들은 안 보일 수도 있다고. 하핫. 주변의 몇몇 선생님들도 “쌤은 아직 보이네?” 하며 곧 그날이 올 거라고 말한다.
이런 대화들이 참 좋다. 서로가 안전한 관계 안에서 건넬 수 있는, 소소한 일상들.
오전 사례 컨퍼런스를 마치고, 동료 선생님 다섯 분과 점심을 먹으러 갔다. 비빔밥과 칼국수 세트, 7,000원.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오늘 나눈 사례에 대해 이야기한다. 느낀 점, 앞으로의 상담 방향, 상담자의 역전이 등.
그리고 “우리는 이런 대화들이 참 재미있어요, 그죠?”라고 말했을 때, 다들 반짝이는 눈빛으로 “맞아요!”라고 대답하는 이 쿵짝이 참 좋다.
커피를 한 잔 들고 센터로 돌아왔다. 작년에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이 말을 건넨다.
“선생님, 저 올해 한상심 필기시험 칠까 고민이 되네요.”
마침 나도 준비 중인 시험이다. 시험 준비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나누었다.
“저는 선생님을 떠올리면 가끔 미래의 한 장면이 떠올라요. 우리가 1급을 따고 슈퍼바이저로 활동하면서, 공개 사례 발표회에서 우연히 만나 반가워하는 장면!
제 개인의 욕구일지도 몰라요. 쌤의 의사를 미리 묻지 않았네요.
저는 그래요. 선생님과 1급까지 함께 가고 싶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하네요.”
선생님은 1월부터 지금까지 이번 시험을 어떻게 할지 혼자 고민해왔다고 한다. 이렇게 길을 찾게 될 줄 몰랐다고.
나는 그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했을 뿐인데, 그것을 좋게 받아주셔서 감사했다.
중간에 다른 대학교 학생상담센터에서 상담 의뢰가 들어와 서류를 처리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며 또 다른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쌤, 아직 안 갔네요? 저 고민이 있는데요…”
초심 상담자인 그 선생님은 얼마 전, 첫 내담자와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아직 교육분석을 받기 전이지만, 슈퍼비전 과정에서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몇 가지 물었다. 현재 그 선생님의 염려는 ‘내 이야기를 온전히 다 말할 수 있을까?’였다. 나는 되물었다.
“꼭 선생님 이야기를 다 해야 할까요?”
그는 그 생각을 못 했다고 했다.
“이번 교육분석은 상담자의 역전이만 다루는 게 현재 상황에서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그 분은 아이가 10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하루만 상담자로 활동하고 있어 다른 날을 비우기 어렵다.
나는 “아이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 그때 자유롭게 교육분석 받으면 되니까, 지금은 10회기 정도 정해놓고 시작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다.
선생님은 조금은 안정된 눈빛으로 말했다.
“이제 가닥을 좀 잡은 것 같아요.”
이야기가 끝날 무렵, 또 다른 선생님이 “나랑도 이야기 좀 해요.”라며 내 손을 잡고 끌었다.
상담실 입구 대기실 쇼파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그 선생님의 개인사가 담긴 이야기라 이곳에 쓸 수는 없지만, 과거 내가 힘들었던 어느 한 자락이 그 선생님에게 위안이 되었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붉어진 눈가에 맺힌 눈물이 아른거렸다.
상담사는 과거의 아픈 기억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유일한 직업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 있다.
그 선생님이 긴 터널을 지나오고 있는 듯해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간의 걸어온 길을 봤을 때, 잘 헤쳐나가리라는 믿음도 있다.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건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믿음이라고 느껴져서, 그 말을 해주었다.
“지금은 그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아도, 분명히 와요. 그 날은.”
내 인생에서
일, 사랑, 놀이, 연대는
참 중요하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연결감을 느끼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더 깊어질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 오후,
이곳의 인연들과 함께 머무를 수 있어
참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