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준비과정에 대한 기록
2025.12.19 금
노트북을 펼친다. 키워드 관련 논문을 열어야 하는데, 머뭇거린다.
"선생님, 이제는 해외논문 읽어야지요."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교수님께서 계속 지켜보시다가 이제는 입을 떼셨다.
오늘 노트북 앞에 앉은 나는 계속 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실 한글로 된 논문들도 그랬다. 논문을 읽기가 싫었다. 이제 시작하면 몇 년 장기 마라톤이 될 거 같아서, 그 입구에 서기가 두려웠나 보다.
나는 왜 이 자리에 와 있을까.
학부시절, 조경학과였던 나는 여럿이 공원 설계를 완성하면 졸업이 가능했다. 그런데 굳이 논문을 썼다. 논문 수업에서 흥미를 느껴서 당시 교수님께서 소논문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제의해주셨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논문을 학교 내 학회지에 기고하고 원고료를 받았다. 여름 내내 도서관 논문 파트에서 열심히 찾고 한 문장 한 문장 완성한 덕분이었다. 할 때는 힘들었는데, 생애 첫 원고료를 받고 나니 뿌듯함이 올라왔다.
'어렵지만 해낼 수 있구나!'라는 감각을 가지게 되었다.
전공을 바꾸어 석사를 진학했다. 글쓰기를 좋아하기에 논문도 나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큰 좌절을 경험했다. 나는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힘들어하는 사람이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애썼으니 더 그랬다.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도 너무 멀리 가고 나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교수님께서는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려주시는 역할을 하셨기에 중간 과정은 혼자 해내야만 했다.
그때의 그 애씀이 힘들었었나 보다. 뭔가 해가도 '나는 부족해. 충분하지 않아.'라는 감각이 새겨졌다.
무능감이었다. 논문계획서를 발표하는 날에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수치심으로 샤워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진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교수님들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그때 그날로 돌아가서 다시 수치심을 경험할 때가 있다.
다시 논문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되자, 그 장면으로 자주 돌아갔다.
'또 내가 아무 말도 못 하면 어쩌지?'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또 이 상황에 마주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왜 논문을 써야 하는 상황으로 다시 내 발로 걸어 들어왔을까.
요즘은 그 생각을 하는 중이다.
'나는 정말 무능한 사람일까?'
그럼 그 반대 상황부터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언제 유능감을 느끼나.
나는 통제가능한 상황이 편안하다. 예측가능하고 내가 당황하고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을 힘들어한다. 이번 학기 내가 어땠나 돌이켜보니,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과제는 거뜬히 해냈다. 시간만 투자하면 가능한 과제였다. 힘들어하는 상황은 내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지레 겁먹고 압도당할 때였다. 과거 논문 심사상황이 그랬다.
그렇다면 논문을 쓸 때는 어떠했나?
돌이켜보면 매일 새벽 일어나서 논문을 찾아보고, 하나씩 해나가는 것을 버겁지만 즐기기도 했다. 또한 논문을 쓰기 위해 몸 건강과 마음 건강을 둘 다 챙기기 위해 매일 운동도 하고, 명상도 했으며 수면의 질 향상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매일매일 같은 패턴으로 살아가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논문 심사상황이 힘들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차근차근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 버거웠다.
이번에 마주하게 된 무능감의 정체는 뭐였을까?
과거의 경험이 나에게 준 신호로 느껴진다. 12월 초부터 2주 넘게 이 무능감에 흠뻑 젖여 있었다. 논문을 펼치지 못하는 나를 관찰했다. 매일 시간은 흘러가고 내 안 불편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떠한 마음이지 들여다보았다. 무능감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나를 밀어붙이지도 않았다. '지금은 여기야.'라고 알려주는 좌표 같았다.
'그때 그러했으니, 지금은 다르게 해 보자.' 이 생각이 떠오르기까지 한참 걸렸다. 이 시간들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어제 교수님과 논문세미나 이후에 이제는 해볼 수 있겠다는 감각이 생겨났다.
과거 나는 무능함을 거부했다.
주변 동기 및 후배들이 이미 투고를 마쳤다는 소식, 학회지에 등재되었다는 소식들이 들리면 축하해 준다. 하지만 한편에 서늘함이 느껴진다. 마음속 불편감은 수치심이 된다.
'석사 졸업하면서 학회지 투고도 못하다니. 그러고도 네가 박사과정이라니.'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문장이었다.
이미 부족해서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내 석사 논문을 투고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세상에 그 부족한 논문을 태어나게 한 것이 수치스러웠다. 그렇게 노력한 논문이 수치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아직도 비공개논문이다)
세상에 내놓기 충분하지 않았다.
그 부족한 사람이 다시 논문을 하려니 힘들었던 것이다.
모르는 채로도 읽을 수 있고,
확신이 서지 않아도 쓸 수 있다.
부족한 상태로 제출해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 사실을 이제 몸으로 익혀볼까 한다.
무능감이 수치심과 만나면 나를 가로막는다.
이제는 이 무능감을 '지금 내가 어디에 있나?' 감각으로 바꿔서 해석하면 어떨까.
앞으로 내가 마주할 박사과정은
유능해지는 훈련이 아니라 무능한 상태로도 계속 쓰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이제 영어논문을 읽고 해석해보려 한다.
무능감은 이제 나를 막는 감정이 아니라
다음 단계를 알려주는 신호이므로.
기꺼이 무능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연구가 가능해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