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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Jan 16. 2023

다시 시작

교육분석을 다른 분께 받기 시작하다.


2023.1.16 월


나의 첫 번째 상담선생님과 교육분석은 종결되었다.

이제 내가 해결할 수 있겠지 싶었다. 별 일이 없으면.


다시 이사가 결정되었다. 또 2년이 지났나 보다. 바로 앞의 글이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라 적었는데, 이건 어쩔 수 없는 환경적 부분인가 보다. 결혼할 때부터 자기 집을 사서 신혼생활을 하는 두 여동생들이 미친 듯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질투했었다. 지금은 그건 그들의 삶이고 이건 내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2년 전 이사는 두려움에 압도될 만큼 힘들었는데, 이제는 내가 A부터 Z까지 온전히 다 담당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살면서 귀찮은 걸 하기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상대는 부인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나는 무섭다는 이유로, 그분은 귀찮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워낙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들이어서 여러모로 부딪혔더랬다. 우리 삶이 평탄할 수 있었을까? (도리도리) 암만 생각해 봐도 평탄할리 없었다는 것에 한표다.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ENTJ 두 명의 삶이 조용했을까.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 없는 걍 나의 삶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일단 나는 말이다.


아무튼 수련을 다시 시작하면서, 새로운 교수님께 교육분석을 받기 시작했다. 이 분과는 세 번째 만남인데 굉장히 진솔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이 유머로 다가왔다. 천성문 교수님 집단상담에서도 같은 메시지를 느꼈다. 타인에게 보이는 내 모습과 내 안의 모습이 일치할 때, 사람들이 오히려 거부감 없이 받아 들었다. 나는 그동안 참 포장하며 살았구나.


오늘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깨닫게 된 건, 나는 진실할 수 없는 환경에 있었던 거였다. 나를 감추고, 보이는 모습에 신경 쓰며 살아야 했다. 그 부분이 무겁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셨다. 그랬었다. 그랬구나.


두 교수님은 아는 분이셨는데, 친밀한 사이는 아니셨다. 그래서인지 진솔한 교수님께서 물어보셨다.

“그 분과 교육분석이 좋으셨나 봐요?”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이런 문장이었던 듯)


내 삶에서 그분은 그때 만나서 좋은 분이셨고,

교수님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분이시라고.


그 분과는 모든 교육분석 회기가 끝난 후, 개인적으로 만나서 밥을 처음 먹었다. 첫만남 이후 3년 만이었다. 아마도 코로나 때문인 거도 있었을 거다. 나의 대학원 생활은 거의 그랬다. ZOOM으로 수업을 듣고, 동기도 만나고, 공부도 했다. 만나서 밥 먹는 게 어색했다.


이 분은 경계선이 뚜렷한 분이 아니라서 좋았다. 오늘은 교육분석이 끝나고 같이 점심을 먹었다. 나는 살짝 어색했는데, 교수님은 편안하게 느껴졌다. 혼자 생각이었을까 싶지만 예전처럼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대로 있을 수 있었다.


생활하시는 모습을 뵈면서 내가 더 편안해질 수 있을 거 같았다. 내려놓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내 삶의 가면들을 말이다. 여러 가지 무거운 페르소나들을.


오전에 교육분석이 끝나고, 오후에 집단상담이 이어졌다. 나와의 참만남이 목표인 집단이다.


나를 표현하는 그림 그리기


왼쪽은 예전의 나이다. 절화다. 꽃잎 한 장 한 장 크고 다른 색을 가지고 있다. 그건 내가 가진 페르소나였다. 예쁜 아내, 공부 잘하고 사회적으로 성취하는 딸, 현명한 엄마, 맡은 일 잘하는 직원 등

그간 나는 내 삶에서 나를 소외시킨채 살아왔었다. 누군가가 바라는 모습 그대로 살려고 했다.

보기엔 좋지만 꺾인 꽃이어서 시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은 잡초이다. 뿌리를 내려서 땅과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 잎 하나쯤 잃어도 괜찮다. 누군가 예쁘게 봐주지 않아도 된다. 모양은 별로인 거 같지만 암술과 수술이 다 있는 꽃이다. 매일 수분과 땅속 양분들과 만나며 살아가고 있다. 밖으로는 햇볕도 받지만 비바람을 맞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생명체이다.



다시 머릿속에 교육분석 한 장면으로 돌아갔다. 오늘 교수님도 의존성에 대해 살짝 언급하셨다. 그 부분은 첫번째 교육분석에서 몇 회기 다루었었다. 아니 깊게. 내가 독립적인 인간인 줄 알았는데 뿌리깊게 의존적인 사람이었다지. 오늘 교수님은 그걸 느끼시고 바로 표현하셨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이 내가 편하게 느껴졌나보다. 바로 알아차려졌다. ‘내가 또 의존하려 하고 있구나!’하고.


두 분은 확실히 스타일이 다르시다. 한분은 상담자의 페르소나가 강하시고, 일상과 상담의 경계가 뚜렷하시다. 한분은 일상인지 상담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마 지금 이 순간 일치성이 느껴지고 담백한 말로 온전히 나에게 전달되었다. 그때의 나는 뚜렷함이 편안했고, 지금은 모호함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첫 번째 선생님께서 나는 흑과 백의 구분이 강해서 회색을 견딜힘도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그러한 힘이 어느 정도 생긴 듯하다.


기록인 이렇듯 기억보다 뚜렷하다. 마흔 살 성장기를 드문드문이라도 적어두길 잘한듯하다. 과거의 나 자신을 칭찬한다.


5회기를 목표로 하지만 더 길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때는 ‘마흔살 자아탐색기’였다면 이제는 ‘마흔두 살 자아성장기’라고 다시 이름을 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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