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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Jan 19. 2023

교수님의 전화 한 통

경계선 세우기

이번 주 월요일부터 교육분석을 다시 진행하게 되었다.  첫 번째 상담선생님과 두 번째 선생님은 스타일이 많이 다르시다. 전에 교수님은 개인적 연락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많이 참다가 안 하신 경우도 있다고 듣기도 했다. 이번 교수님은 Here and Now를 생활 속에서 그대로 실천하고 계시는 분이었다. 


어제저녁 시간에 카카오톡으로 전화가 왔다. 저녁시간이라 둘째 밥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교수님 전화라서 받았는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와이파이 관련 이슈인 듯했다. 심리상담센터를 통해 교육분석을 예약했던 터라, 각자 개인 전화번호를 모르고 있었다. 교수님께 카톡으로 내 전화번호를 보내드렸다. 그리고 바로 전화 오실 줄 알았더니 하루를 넘겼다. 오늘 오후 2시경 다시 전화가 왔다.


"어제 집단상담에서 내가 선생님 말할 때 잠시 멈추게 했던 게 마음에 걸려서."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셨다. 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서, 교수님께 어떤 상황이었는지 몇 번을 여쭈었다. 한참 생각하니 떠올랐다. 이번 집단상담에서 내가 실행할 목표는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표현하자.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지 고민하지 말고.'인데 그러다 보니 수다스러운 캐릭터가 되고 있었다. 교수님은 한 집단원이 뭔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여러 가지 이슈가 한꺼번에 나와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셨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실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될까. 


오늘 대학교상담센터 수련 및 객원상담원 면접이 있었다. 센터장님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다른 대학에서도 수련상담원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 우리 학교에서는 어떻게 상담하실 건가요?"

정확하게 이런 질문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렇게 알아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 내 눈앞에 있는 학생들과 함께 머물러주고 싶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질문을 했는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고 내 대답만 기억난다. 진솔하고 싶다고 지금 이 순간의 나와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오늘 전화 온 교수님을 만난 건 딱 세 번이다. 그런데 한번 만날 때 오전 2시간, 점심시간 1시간, 오후 4시간을 만났다. 한번 뵐 때마다 6시간 이상 만난 셈이다. 횟수는 3번이지만 총 함께 머무른 시간은 20시간 정도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하시는지, 밥 먹을 때 자연스러운 대화, 교육분석 장면에서 상담자로서 반응, 집단상담에서 리더로서 모습, 평상시 모습을 동시에 보게 되었다. 편안했다. 각각 다른 역할인데 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또 대화 내용이 진실하고 솔직하게 느껴졌다. '저분 곁에서 몇 년을 머물면 나도 닮아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배우고 싶었다. 


전화를 하신 목적은 '나에 대한 염려'였다. 교육분석은 1회기만 진행되었지만, 집단상담에서 8시간 이상 본모습 등 여러 가지로 나를 지켜보면서 뭔가 마음에 남아있었다고 하셨다. 꼭 이 말을 해야겠다고 싶어서 전화하셨다고.


여기에는 남길 수 없는 여러 내용을 먼저 이야기하셨고, 그다음 건강한 경계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교수님도 센터와 어떻게 계약을 진행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다. '나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은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개방하셨다. 그러니 내가 뭔가를 이야기해도 안전할 거 같았다. 


상담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때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상담은 수다가 아니므로, 내담자에게 도움 되는 이야기만 해야 한다. 그 틀에 갇혀 있었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야지'라는 생각이 강했다. 교수님의 말씀들을 떠올려보면, 그냥 하는 이야기는 없었다. 연세가 있으시니 삶의 연륜과 상담자의 경력이 함께 버무려져서 자연스러운 자기 개방이 진솔함으로 느껴지는 거였다. 나에겐 그랬다.


막연하게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구체적으로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셨다.


뭔가 불편한 게 있으면 다이어리나 노트에 적어봐요.
그냥 지나가지 말고, 참지 말고 그때그때 구체적으로.


내가 뭔가를 표현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씀드렸더니 구체적으로 무엇이 걱정되는지 물으셨다. 그리고 현재는 모호한 관계라고, 앞으로는 경계선이 있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원하는 것을 구체화시키고 명문화시켜야지 말할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었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어제 NVC연습모임에서 멤버 언니가 이야기했던 문장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1학년한테도 가서 이렇게 말하면  고개를 끄덕인다고 말이다.


"우리는 각자 내가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돼"


'너는 왜 이걸 못해.' '너는 왜 안 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오늘 교수님의 말씀과 어제 그 언니의 말을 합쳐서 이렇게 적어놓아야겠다.


나는 내 삶을 살면 돼. 


누구 탓을 할 필요가 없는 거였다.

나는 내걸 하면 된다. 내 경계선도 내가 세우면 되는 거지. 침범하는 누군가를 탓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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