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나에게 하고 싶은 말
2013년 나에게로 돌아가서 딱 세 가지만 말해준다면 뭘 이야기해야 할까?
하고 싶은 걸 하려면 하기 싫은 것도 할 줄 알아야 해.
이 말부터 해주고 싶다.
돈은 벌기 싫었고, 공부만 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에 나가 고생하기는 싫고 재미있는 것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학생도 직업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저 사람은 왜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지 서운했다. 지금 와서 보니 그랬다. 나의 성향상 세상에 나가 내 모습 그대로 인정받고 무언가를 해나가면서 쌓아가야 했었는데 나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거였다.
마음에 불편감이 있었다. 시선이 내 안에 머무르기보다 밖을 향했다. 주변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탓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매일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면 해결될 일이었다. 남편에게 왜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을 뛰쳐나와서 이렇게 고생해야 되는지 불평했다. 덕분에 나도 나와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거였는데 말이다.
네가 원하는 게 아니라도 기꺼이 받아볼래?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키와 민호가 나온 적이 있다. 둘은 보이그룹 샤이니 멤버로 가족이자 직장동료 사이 그 무언가 끈끈함이 있었다. 하지만 서로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특히 민호는 감정형(F) 성향이 짙어 보였고, 키는 누가 봐도 사고형(T)이었다. 게다가 키는 나와 같은 유형이라 프로그램 속에서 보이는 일상생활 속 키의 행동에 공감이 많이 갔다. 키는 자신이 생일이 가까워지면 민호에게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사달라고 했다. 심지어 네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에게 사달라고 할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민호의 승부사기질을 건드려서 사서 보내게 만들었다. 나는 그까진 아니었다. 아니, 사실 키와 비슷한 성향은 맞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상대에게 솔직하지 못해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 키가 거의 100프로 이해가 갔다.
나 또한 내가 필요한 것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가까운 이들이 나에게 선물을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면 은근슬쩍 옆으로 제쳐두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진짜 필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도 말이다. 비단 물건만이 아니었다. 사실 조언도 그랬다. 나는 타인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나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아내였고, 아이 엄마였다. 삶을 함께 가꾸어가는 가족들의 말은 한 번쯤은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이제는 중 3이 되는 딸이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 그렇게 하면 엄마 진짜 후회해. 나는 잔소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엄마를 위해서 말하는 거야."
거의 처음이었다. 딸의 말이 이토록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순간은. 그 이후 딸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고 노력 중이다. 엄마에게 저렇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참았고, 고민했으며, 아팠을까.
그 이후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상대가 주는 것들을 기꺼이 받고 있지 않았구나.'
기꺼이 받았을 때는 기쁨이 올라온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마음으로 받았을 때는 불편해진다. 상대가 그걸 모를 리 없다. 서른두 살 나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너는 (누가 뭔가를 주면) 기꺼이 받고 있니?"
네가 가진 게 무엇인지 살펴볼래?
이사를 준비 중이다. 쌓여있는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내가 이런 것도 가지고 있었구나!' 싶었다. 50리터 종량제봉투에 그대로 들어가는 물품들도 많았다. 있는지 모르고 또 산 경우도 있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소홀히 하며 살고 있었다. 가진 것을 돌보지 않았다. 어떤 것은 당연하게 생각했고, 부족한 것들을 불평했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 요구하는 것도 줄어든다.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결론적으로 내가 진짜 원하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같은 물건을 두 번 살 필요가 없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에 다이소에 가서 이것저것 가득 담지도 않게 될 것이다. 내가 가진 물건들을 애정하며 아껴 쓰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물건만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인연도 그랬다. 나는 상처 입을까 봐 두려워서 친구를 많이 사귀지 못했다. 몇 명 소수정예로 사귀었다. 남편은 '너는 친구 없지?'라고 신혼 초에 꽤 날카롭게 이야기했더랬다. 지금은 그런다. "네 주변 인물은 대하소설급이야. 토지 등장인물처럼 말해도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어." 한동안은 많이 만나고 또 헤어지고 또 채워가며 살았다. 에전에는 떠나는 인연들은 그런가 보다 했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네가 소중한 걸 소중하게 다루는 법을 몰라서 그랬던 거였다. 이제는 내가 가진 인연들의 끈을 소중하게 다루려고 노력한다.
이사 가고 나서는 정리정돈에 더 신경을 쓰려고 한다. '나는 집안일을 못해.'라는 한 문장에 나를 가둘게 아니었다. 앞으로 살아갈 공간에서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인가 생각한 후 물건을 구매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거였다. 내 삶의 중심은 나이기에.
슬픔에 잠겨 있을 때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지금도 잘하고 있어 괜찮아."라고.
이제 나는 꽤 내면에 힘이 생겼나 보다. 10년 전에 나를 만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말들이 펑펑 솟어나고 있다.
오늘 하고 싶은 말 세 가지는
1. 하고 싶은 걸 하려면 하기 싫은 것도 할 줄 알아야 해.
2. 네가 원하는 게 아니라도 기꺼이 받아볼래?
3. 네가 가진 게 무엇인지 살펴볼래?
이었다.
이제는 조언들이 떠오른다. 이것이 내가 나를 소중하게 다루는 방법이었다.
가까운 타인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말해준다면,
그건 어쩌면 그 사람이 당신을 정말로 소중하게 다루는 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