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및 대면 모두
이사준비는 끝이 없다. D-3이다. 같은 공간에서 일상을 살아갈 때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하나씩 면밀하게 만나고 있다.
오늘 첫 번째 처리한 일은 인터넷 및 TV관련 명의변경 건이었다. 리모컨으로 TV 켠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채널을 찾는다. 그리고 본다. 평소에는 이렇게 진행될 일이다. 노트북을 켜서 내 할 일을 한다. 이러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사는 공간을 이동한다는 건, 생활과 관련된 모든 것을 건드려야 하는 일이었다.
이사가 확정된 후, 인터넷 셋톱박스 이전 설치건으로 KT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 한 번에 연결될 리가 없거니와 정말 운 좋게 상담사와 연결된다 하더라도 관련부서로 돌리는데 시간이 또 걸린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필요한 서류를 알려주고 가까운 KT플라자로 방문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남편의 도장을 받아서 우리 집에서 30분 걸리는 곳에 시간을 내서 갔다. 그런데??? 처리가 안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분명 유선상으로 안내받았을 때는 가능하다고 했고, 서류만 필요하다고 했었다.
휴, 나의 오전시간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안타까워하며 나오는데 딸이 그랬다.
"엄마, 우리 LG+에서 상담이나 받아볼까."
알고 보니 그곳은 우리 지역 본사직영점이었다. KT에 방문했을 때와 달리, 빠른 일처리와 신속 정확한 처리, 그리고 고객감동서비스에 놀랐다. 담당자분의 역량의 차이였을까 회사 시스템의 차이였을까.
아무튼 우리는 상담만 받으려 했다가, TV와 인터넷, 핸드폰 결합 상품까지 모두 변경하고 나왔다. 아침 9시에 집에서 나와서 인터넷 관련 일처리만 했는데, 오후 1시간 되었다.
그 사이 인터폰 교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사 갈 집이 빈집이라서, 작업하시는 분이 비번을 알려달라고 했다. 왠지 뭔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내가 열어드린다고 했었는데, 인터넷 관련 일을 처리하고 나니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결국에는 비번을 알려드렸고 내가 도착하니 작업하고 가신 후였다. 나는 남겨진 새 인터폰과 요금 청구서를 문자로 받았다. 오늘 만난 타인 두 번째였다.
그 이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KT해지 관련 전화였다. 아침에 위약금 관련해서 문의했었다. 어느 회사든 자기 고객을 뺏기는 건 아주 큰 일이니, 담당자에게 뭔가 리스크가 가겠지. 나는 KT장기고객이다. 중학교 때 시티폰을 썼을 때부터 KT고객이었고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변경한 적이 없다. 그만큼 충성고객인데, 잡힌 물고기엔 밥을 주지 않는 법이지. 가면 갈수록 서비스에 실망했다. 물론 인터넷 품질과 전국에서 휴대폰 사용 가능 지역이 더 나을지는 모르겠으나(객관적 근거 없음 추측) 일처리가 비효율적인 건 확실하다. 해지 관련건으로 전화를 하니 굳이 굳이 아침에 위약금을 안내한 담당자를 찾아서 나에게 다시 연락을 주겠다 한다.
아이고. 굳이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본인들 조직 내부의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고객이 원하는 일처리를 한 번에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과거 공기업이었던 일처리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휴. 오늘 LG의 담당직원은 둘째 휴대폰 이전을 위해서 40분을 달려서 와서 일처리를 도와주고 다시 1시간을 달려서 사무실에 복귀했다. 이런 서비스는 처음 받아봤다. KT 27년 이상 장기고객이었을 땐 상상도 할 수 없는 서비스였다. 더 디테일하게 느낀 것이 꽤 있지만 공개해도 되나 싶어서 일단 패스.
하여튼 KT는 마지막까지 실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결국 몇 번의 통화 끝에 해지 접수가 되었고, 이삿날에 셋톱박스를 수거해 가기로 하였다. 이건 두 번째 일처리.
오늘 세 번째 일처리는 인터폰교체작업 관련이다. 결제 관련해서 다시 입금을 했다. 사실 이 건도 처리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던 거다. 이제까지 이사를 몇 번이나 했지만 인터폰을 교체하긴 처음이다. 이번집도 자가가 아니라 집주인이 따로 있는데, 세상에 인터폰이 고장 나서 아예 목소리도 안 들리고 화면도 안 뜨는데 그냥 살아라고 하지 않나? 중간에서 부동산 소장님께서 욱하셔서 집주인에게 연락하셨다. 20년이 다되어가는 아파트라서 고장 나고 있다고. 보통은 집주인이 교체해 준다고 말이다. 85세 공무원 정년퇴임하신 집주인 할아버지는 끝까지 그냥 살아라를 고집하셨다. 소장님의 긴 통화 끝에 10만 원 지원해 주는 걸로. 인터폰 교체비는 29만 원이다. 휴. 해외에 나가있는 남편님에게는 뭐라고 보고해야 하나. 아직 이 건은 끝난 게 끝난 게 아니다. 굳이 우리 집도 아닌데 교체까지 했었어야 했나라는 말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사는 일처리와 일처리, 통화 또다시 통화, 결제와 결제가 계속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부동산 소장님, 현재 집주인, 이전 집주인, 인터넷, TV관련 통신사 직원, 도어록 설치사장님, 현관 신발장 필름작업 인테리어 사장님, 전등교체작업 설비 사장님, 전자제품 배송직원, 판매직원, 가구설치 및 배송 직원분들, 또한 에어컨 이전 설치 기사님, 각종 택배 기사님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통화하고 또 만나야 할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사당일에는 이사업체 직원분들과 사장님과 만남이 또 예정되어 있다.
아직 끝난 게 끝난 게 아니다.
그나마 오늘 기분이 조금 좋은 일 중 하나는 통신사 이전으로 비데를 사은품으로 받았다는 거다. 15만 원 정도는 세이브함.
분명 오늘 만난 타인들에 대해 적으려고 앉았는데, 이사에 대한 한탄만 가득.
하지만 소소한 행복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가장 큰 행복은 아이들이 지금 집보다 이사 갈 집을 훨씬 더 좋아한다는 거다.
그거면 되었다.
그렇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타인 두분이 좋아하시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