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날 느낀 두 감사
2년마다 이사를 한다. 신혼살림은 시댁에서 시작했고, 친정에서 살다가 지금 지역에 정착했다. 9년 전이었다. 첫 번째 집에서는 일 년 연장해서 살았으니, 이 지역에서만 네 번째 집이다. 결국 돌고 돌아서 첫 번째 아파트와 다른 단지이다. 초등학교를 끼고 있는 아파트라서, 여기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은 6살 터울로 한 명이 졸업하면 다시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나는 초등학교 학부모만 12년 예약인데, 이제 4년 남았다. 그러니 학교 근처 아파트를 벗어날 수 없었던 거다. 하여튼 첫 번째 두 번째 집과 같은 아파트로 다시 이사 왔다.
이사에 대해 감사한 점
처음부터 내 집에서 살았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것들이 있다. 동향집과 남향집의 차이를 확실히 알고 있다. 고층과 저층의 차이도 안다. 또한 인테리어는 매끈하게 잘되어 있으나 방음이 진짜 안 되는 곳도 있다. 주거공간의 다양함을 경험했다. 또한 집에 대한 내 취향을 알게 되었다. 나는 10층 이상 고층을 좋아하고, 풍경이 좋아야 했다. 아침에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이 좋고, 실내등은 무조건 밝아야 한다. 처음에 이사 다닐 때는 돈이 없었다. 남편이 창업하고, 시댁에서 지원받은 것이 없었으며 우리는 둘 다 신분이 보장되는 회사를 뛰쳐나왔었다. 대출은 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저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니 이사 다녔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자가는 아니지만, 내 취향의 집을 내가 원하는 날짜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사하는 것이. 좌충우돌 일은 많았고, 머리도 아팠지만 마음이 편하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알아차린 후에 선택해서였다. 지금 이사 첫날 내 침대에 누워서 맥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유튜브 뮤직에서 좋아하는 반려음악을 틀어놓고 있는데, 지금 이 순간 정말 행복하다. 내가 선택했기에.
내일도 정리할 것들이 많고, 아직 가구도 다 오지 않았다. 옷장은 배송 중에 파손되어서 다시 재배송되고 식탁은 언제 올지 기약도 없다. 소파는 2,3주 걸린다 했고, 거실책장도 2월 중순이 되어야 할 듯하다. 이번 달 일정은 꽉 차있는데, 특히 토요일 특강준비는 아직 마치지도 못했다. 뭘 믿고 이러나.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을 뿐이다. 물론 틈틈이 하고 있다. 내가 수십 번도 더 했던 것을 잘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이라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 보다. 이번 이사에서 또 한 가지 감사한 것, 나를 조금 더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감사한 분들
오늘은 손없는 날이었다. 이사하려면 몇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는 그런 날. 1월 초 이사가 결정되고 몇 군데 전화했었는데 오늘과 내일은 모두 마감이었다. 지역카페에서 유명한 이사업체가 마침 오늘이 비어있었다. 집주인과 계약이 늦어져서 이사업체와 정식계약을 못했는데, 일주일 넘게 이삿짐센터 사장님이 기다려주었다. 오늘도 이삿짐 옮기고 마무리까지, 친절하게 해 주셨다. 오늘의 집에서 식탁의자를 주문했는데 너무 무거워서 혼자 옮길 수가 없었다. 사장님이 풀어서 조립해서 뒷정리까지 해주고 가셨다. 또한 부엌도 수납공간이 줄어서 고민이 많았는데, 이삿짐센터 이모님이 보기에 좋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배치해 주고 가셨다. 물론 일정 부분 내가 정리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원래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맞게끔 하는 것이 정리 아닌가. 내가 해야 하는 부분의 60프로는 도움 받은 느낌이다.
또 감사한 우리 큰딸. 딸이 없었더라면 오늘 이사를 어찌했을까. 이사 준비부터 오늘 가구 배치까지, 딸의 역할이 컸다. 자기 방이 생겨서 좋아했고, 이번에 필요한 책상 및 가구들은 본인인이 오늘의 집에서 골랐다. 도면을 그려서 이래저래 여러모로 며칠 생각하더라. 중 3이니 앞으로 3,4년 뒤에서 우리 집을 떠날 예정이다. 이제 그녀에겐 가족과 함께할 마지막 집이라고 보면 된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 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키우지 못해서, 예쁜 방으로 꾸며주지 못해서, 못난 엄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것도 지 팔자지.' 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니 딸이 그런다. "엄마 우리 여기도 살아보고 저기도 살아봐서 얼마나 좋아. 나는 엄마랑 이사 다니면서 좋았어." 그 말에 또 왈칵 눈물이 났다. 딸 덕분에 가슴속 뻥 뚫렸던 부분이 채워지고 있다. 그렇게 획득된 안정애착으로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해외 있는 남편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이사하고 정리되기 전 어수선한 집을 보더니 표정이 좋지 않다. 감사를 받는 기분이다. 회사 다닐 때 감사기간에는 초긴장상태였다. 전임자가 했던 서류들도 정리해야 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임업직이라서 창고에 농약뿐 아니라 호미개수까지 맞춰야 했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준비하고 대비하고 있어도 어디서 어떻게 뭐가 터질지 모르는 것이 감사기간이었다. 그 감사기간 기분이었다. 입이 바짝 마르고 등근육이 긴장되는 것이 느껴졌다. 어제 이삿짐 정리하고 나온 쓰레기를 버리다가 허리가 뻐근해졌는데, 어깨까지 긴장되어 뭉치는 기분이었다. 남편의 경제력 덕분에 이번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이사를 하게 되었다. 감사한 분에게 감사받은 기분이었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 남편의 경제력에 감사하다. 다음 이사는 나의 경제력으로 할 수 있을까. 2년 혹은 4년이다. 딸과 의논하기를 이곳에서 가능하다면 4년을 살고, 다음에는 진짜 우리 집으로 이사하기로 약속했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보물지도'의 힘을 믿는다. 올해는 딸과 함께 만들어봐야지.
이삿날은 감사한 날이었다.
적고 보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