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방법
오늘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을 펼쳤다.
소제목들을 보면서 오늘 쓸 글감을 찾았다. 몇 꼭지를 읽어도 '뭘 쓸까'라는 세 글자와 공명을 일으키지 못해서 기다리며 책장을 넘겼다. 결국 한 문단을 만났다. 여기에 옮겨 적어보려 한다.
55쪽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랬지. 이간은 세 가지 부류가 있다네. 개미처럼 땅만 보고 달리는 부류. 거미처럼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사는 부류. 개미 부류는 땅만 보고 가면서 눈앞의 먹이를 주워 먹는 현실적인 사람들이야. 거미 부류는 허공에 거미줄을 치고 재수 없는 놈이 걸려들기를 기다리지. 뜬구름 잡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학자들이 대표적이야.
마지막이 꿀벌이네. 개미는 있는 것 먹고, 거미는 얻어걸린 것 먹지만, 꿀벌은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들어. 개미와 거미는 있는 걸 gathering 하지만, 벌은 화분을 transfer 하는 거야. 그게 창조야.
여기저기 비정형으로 날아다니며 매일매일 꿀을 따는 벌! 꿀벌에 문학의 메타포가 있어. 작가는 벌처럼 현실의 먹이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발 뻗는 순간 그게 꽃가루인 줄 아는 게 꿀벌이고 곧 작가라네.
작가는 꿀벌
궁금한 게 많다. 일상을 살아가며 질문을 한다. 상담사라는 직업상 질문이 계속 떠오른다는 건, 플러스 요인인 경우가 더 많다. 아직은 그렇다. 질문을 하면 답을 듣거나, 찾게 된다. 뭔가 알게 되면 쓴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즐거움과 연관되어 있다.
이어령선생님 덕분에 개미와 거미, 꿀벌에 대해서 같이 떠올려보게 되었다. 개미는 부지런해 보이지만 먹이를 모아서 있는 그대로 먹었다. 거미는 종종 위협적으로 보이며 걸려든 먹이를 먹었다. 꿀벌은 가만히 있으면 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지만 그래도 무섭다. 자기 보호를 잘하는 이미지다. 그리고 모은 걸 새로운 걸로 만들어낸다. 식물이 양분과 햇빛으로 광합성해서 엽록소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신에게 필요한 걸 스스로 만들어내는 부분이었는데, 오늘 보니 꿀벌도 그랬다.
두 영역의 조합
오늘 낮에도 대학교 학생상담센터에서 교육을 들었다. 아침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였다. 오늘 강의하신 교수님은 '게슈탈트치료'+'모래놀이치료' 영역을 통합해서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셨다. 그리고 임상장면에서 많은 사례가 쌓이니, 경험적 지식까지 쌓여 있음이 느껴졌다.
대가를 쫓아다니면서 그대로 배우려고 하는 것보다 혼자 공부하다 다시 배우러 갔다가 돌아와서 내 집에 담장을 쌓고, 필요한 부분만 일본, 영국 슈퍼바이저들에게 배우고 다시 자기 언어로 지식을 쌓아갔다.
'그럴 수도 있구나.' 싶었다. 나는 남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가려고 하지 않는가?
개미들처럼 말이다. 기존에 있는 걸 그대로 먹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더 노력하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에 걸려든 일만 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마음이 편안하다는 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에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럼 내가 지금 불편하다는 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나의 전문 영역에서도 말이다.
가정에서도 그랬다. 꼭 예전의 관계를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어쩌면 나는 사고체계가 많이 경직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이래야 해.' '남편은 이래야 해.' 이러한 문장들에 갇혀있었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남들이야 뭐라 하든 나에게 맞으면 되는 게 아닐까.
나만의 영역
집에 돌아와서 씻고 아이와 저녁 먹으니 8시였다.
저녁 8시부터 집단상담 양성과정 계획서 발표수업이 있었다. 수업은 10시 30분까지 이어졌다. 나는 시간이 부족해서 기본계획서 2장 제출했다. 하지만 덕분에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더 확장시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 다다음주 월요일에는 시연을 하러 간다. 이제는 정신 차리고 준비해야지.
다음은 없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그러다 보니 쉬는 시간이 없네. 이번주도 일요일 MBTI일반강사 양성과정까지 일정이 꽉 차있다.
어쨌든 뭐라도 되겠지. 나만의 영역과 나의 경력을 쌓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