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습작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타티스 Feb 21. 2023

기다림

나를 기다립니다

대학교 상담센터 수련일이다. 방학도 거의 일주일 남았고, 아무래도 개학을 앞두고 있다 보니 학생들의 상담신청이 많이 없었다. 지난주보다는 훨씬 여유로웠다. 3년째 수련하고 있는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조용한 날이 있을 줄 상상을 못 했다고 했다. 어쨌든 오랜만에 여유를 즐겼다. 옆 선생님과 담소도 나누고, 책도 읽고, 상담실 내에 치워야 할 것들도 있었다.


서류파일에 제목을 2023년으로 바꾸어서 달았고, 새로 입고된 심리검사 몇 부인지 세어서 보고했고, 서류 파쇄기에 꽉 찬 쓰레기들을 챙겨서 비웠다. 어제까지 바빴는데, 이런 여유가 좋았다.


다행히 옆에 근무하시는 선생님은 지난달 집단상담에서 뵌 분이기도 했고, 올해 쉰여덟 삶의 선배님이기도 했다. 툭 던지는 말에 위로를 얻었다. 


"아무나한테 내가 이 말하지는 않아요. 왠지 선생님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리고 툭 뭘 던져주신다. 집에 와서 추천해 주신 영상을 잠시 들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선생님께 컴퓨터 관련 방법을 전달해 드렸다.


평소 나는 만났을 때 대하기 어려운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었다. 에니어그램 몇 번 유형, MBTI 어느 어느 유형 내 마음속으로 담아 둔 뭔가가 있었는데, 이 선생님이 딱 그 유형이었다. 그런데 전혀 불편감을 느끼지 못했다. 선생님께 그 말을 드렸더니, 답하신다.


"내가 나를 데리고 살기 얼마나 힘들었게요. 그래서 노력을 많이 했죠."


그 말이 고마워서 두 손을 잡았다. 감사하다고. 나의 편견을 깨주어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마흔둘이니, 십 년이 훨씬 지나면, 사람들이 나의 에니어그램 유형을 추측할 수 없을 만큼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핵심 결핍은 변하지 않겠지만, 자가치유는 더 할 수 있겠지.


희망이 생겼다.


인생을 기다리고

시간을 넘기면

그러면 그럴 수 있겠지.


다행이다.

그분을 만날 수 있어서.






*오늘은 마음이 많이 힘들어서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글루틴 덕분에 쓴다.

그랬다..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는 그 순간을 기다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