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다립니다
대학교 상담센터 수련일이다. 방학도 거의 일주일 남았고, 아무래도 개학을 앞두고 있다 보니 학생들의 상담신청이 많이 없었다. 지난주보다는 훨씬 여유로웠다. 3년째 수련하고 있는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조용한 날이 있을 줄 상상을 못 했다고 했다. 어쨌든 오랜만에 여유를 즐겼다. 옆 선생님과 담소도 나누고, 책도 읽고, 상담실 내에 치워야 할 것들도 있었다.
서류파일에 제목을 2023년으로 바꾸어서 달았고, 새로 입고된 심리검사 몇 부인지 세어서 보고했고, 서류 파쇄기에 꽉 찬 쓰레기들을 챙겨서 비웠다. 어제까지 바빴는데, 이런 여유가 좋았다.
다행히 옆에 근무하시는 선생님은 지난달 집단상담에서 뵌 분이기도 했고, 올해 쉰여덟 삶의 선배님이기도 했다. 툭 던지는 말에 위로를 얻었다.
"아무나한테 내가 이 말하지는 않아요. 왠지 선생님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리고 툭 뭘 던져주신다. 집에 와서 추천해 주신 영상을 잠시 들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선생님께 컴퓨터 관련 방법을 전달해 드렸다.
평소 나는 만났을 때 대하기 어려운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었다. 에니어그램 몇 번 유형, MBTI 어느 어느 유형 내 마음속으로 담아 둔 뭔가가 있었는데, 이 선생님이 딱 그 유형이었다. 그런데 전혀 불편감을 느끼지 못했다. 선생님께 그 말을 드렸더니, 답하신다.
"내가 나를 데리고 살기 얼마나 힘들었게요. 그래서 노력을 많이 했죠."
그 말이 고마워서 두 손을 잡았다. 감사하다고. 나의 편견을 깨주어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마흔둘이니, 십 년이 훨씬 지나면, 사람들이 나의 에니어그램 유형을 추측할 수 없을 만큼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핵심 결핍은 변하지 않겠지만, 자가치유는 더 할 수 있겠지.
희망이 생겼다.
인생을 기다리고
시간을 넘기면
그러면 그럴 수 있겠지.
다행이다.
그분을 만날 수 있어서.
*오늘은 마음이 많이 힘들어서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글루틴 덕분에 쓴다.
그랬다..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는 그 순간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