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마지막 날일 것처럼
2주 전 집단상담에서 어디든 갈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내 장례식 날로 가고 싶다고 했었다. 매일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고 있다. 며칠 전까지는 이사 후유증으로 허리랑 어깨가 아팠다. 시간을 쪼개 한의원 진료는 받고 나니, 살만해졌다. 사실 주말 일정을 소화하려고 지난 일주일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 갔다.
병원에 갈 때마다 물리치료선생님이 물으셨다. "도대체 뭘 하시는데 이렇게 어깨가 뭉쳐있는 거예요?"
질문을 받으면 생각하게 된다. '내가 뭘 했더라.'
아마 수요일이었던 거 같은데, 화요일은 대학교 상담센터에서 수련상담원으로 근무하는 날이다.
목요일은 교육분석과 3시간 슈퍼비전이 있었고, 금요일 저녁은 퍼스널브랜딩 글쓰기 강의가 있었다. 그전에 과제를 급하게 해서 냈다. 토요일은 심학원 오리엔테이션이 있었고, 일요일은 집단상담에 참여했으며, 오늘은 집단상담 강사과정 시연이 있었다. 토요일 서강대 근처에서 모임이 있었고, 일요일은 해운대 센텀, 월요일은 수서역 송파 비즈니스 센터에서 모였다.
해 뜨는 거 보면서 KTX역에 갔는데, KTX역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은 해가 져서 깜깜해졌다. '도대체 미래에 뭐가 되려고 이러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2018년 참여한 엄마일연구소 '엄마의 인생설계도'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불안하고 세상이 두려운 사람이었다. 친정엄마가 주말 수업 3주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남편이 2번은 태워주고, 1번은 내가 대중교통을 타고 갔다고 일기에 적혀있었다. 40부터는 매달 나를 스스로 먹여 살릴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싶다고 일기에 적어두었다. 지금 그런가? 아직 완전히 먹여 살리지는 못하지만,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작년에는 회사 소속으로 일하고 BK를 하기도 했으니, 2018년보다는 훨씬 나아진 상황이다. 그때 수업을 들으러 가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내가 뭐가 되려고 이렇게 아이들도 엄마한테 맡겨 가며 수업을 들으러 가나.'
생각난 김에 그때와 지금 변화된 세 가지를 남겨두려 한다.
변화
첫 번째, 어디든 갈 수 있다. 운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남편 덕분이다. 정말 무서웠는데, 중고차를 사주고 운전연수를 시켜주었다. 세세하게 자동차 하나하나 관리를 도와주거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방향성은 맞게 제시하는 사람이다. 나에 대해 잘 알기도 하고. 덕분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오늘도 운전해서 역까지 갔다 왔다. 택시보다는 내 차를 운전하는 게 더 편해진 요즘이다.
둘째,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타인도 믿지 않고, 나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랬으니 세상에 뭐 그리 재미있는 게 있었을까. 주어진 일을 했고, 내가 원하진 않지만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잘하려고 애를 썼다.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만큼만 한다. 예전처럼 애를 써서 나를 갈아 넣을 만큼 죽을 만큼 하지 않는다. 그건 나를 갉아먹는 행위였다. 잘 못하면 어때, 완벽하지 않으면 어때 싶다. 어차피 계속할 일이라면 하다 보면 잘하게 되어있을 거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셋째, 나를 데리고 사는 게 편해졌다. 어제 집단상담에서 덕질 이야기가 나와서 다른 집단원이 물었다. "제일 최근에 누구 덕질했어요?" 생각해 보니 2PM 준호였다. 진짜 준호와 슈퍼주니어 규현이 아니었다면 나는 석사 논문을 다 마치지 못했을 거다. 덕질이 나를 살렸다. 지금은 살만한가 누구를 그리 덕질하지 않는다. 굳이 대답하자면 "나 자신을 덕질하고 있어요."라고.
2018년을 문득 떠올리다 보니, 생각이 나서 변화에 대해 정리해 본다.
앞으로 5년 뒤에는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내 미래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