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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Sep 22. 2020

모호함을 견디는 힘

불확실해도 괜찮아

두 번째 만남


"어디에 그렇게 적혀있어요?"

선생님과 두 번째 만남이다.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교육 분석을 시작했다. 개인상담이다. 지난 회기에 심리검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보통은 상담실에서 진행된다. 나는 수련 중이고, 마침 3주 전에 몇 가지 검사를 한꺼번에 했다. 선생님은 검사결과지를 보시더니 말을 꺼내셨다.


같은 결과지 다른 해석

 

 일주일 전에 수련받는 곳에 나의 심리검사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 몇 가지 검사를 한꺼번에 분석해야 해서 하나씩 꼼꼼하게 보지는 못했다. 나름 내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보고서를 작성해서 냈다. 그 후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분명 같은 결과지였다.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시니,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선생님께 이 글을 쓴다고 동의를 구하지 못했으므로, 자세한 내용을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글에 남길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선생님께 말했다. "사람들이 왜 상담을 받는지 알 거 같아요."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한 것, 그래서 수련이 필요했다.


조급했다

     

 석사과정은 논문을 잘 통과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한국방송통신대 청소년 교육과에 3학년 편입해서 2년 공부하는 동안 고민했다. '나는 상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아이들을 키워놓고 다시 시작한 공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해 주었다. 학과 공부에서 상담과 청소년 지도, 두 가지를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람과 감정을 깊게 만나는 상담은 힘들지 않을까 고민했다. 비폭력대화, 회복적 정의 공부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학교 상담실 봉사, 마을교사를 하면서 아이들도 만나게 되었다. 2년 동안 겪고, 상담 공부를 더 해보라고 제안해주신 멘토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상담은 아닌 거 같아요. 교육학에 다른 전공을 할까 봐요." 이렇게 말해놓고, 보름 뒤에 최종 원서 지원할 때 세부 전공 상담심리를 지원했다. 내 손이 상담을 쓰고 있었다. 학회 수련이 힘들다는 걸 간접적으로 들었기에,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일단 석사 마치면 수련을 생각해봐야지, 막연하게 생각했다. 입학해서 보니, 졸업하려면 수련을 해야 했다. 마음만 앞섰고, 세부적인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을 선생님은 검사 결과지에서 탁 짚어내셨다. 이 과정을 은 선생님한테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경험과 경험이 쌓이면


 '경험과 경험이 쌓이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스스로 바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게 될까.'

 수련은 모호함을 견디는 시간이었다. 졸업하려면 필요한 시간이다고 생각했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정해진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무언가가 나에게 오면, 다시금 알맞은 의미로 태어나는 과정이 필요했다. 지식도 그렇고, 어쩌면 사랑도 그랬다. 

 예전엔 그랬다. 나 스스로 믿지 못하기에 많은 지식들을 한꺼번에 다 집어삼키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모호한 감정이 선명해지리라 착각했다. 그렇게 소화하지 못할 방대한 정보들을 찾아 헤매었고, 그렇게 이수증은 쌓여갔다. 그 증명서가 지식이 내 안에 들어와서 제대로 이해되었다는 걸 알려주는 건 아니었다. 수업을 10시간 들었다면, 이해는 그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적용에는 몇 배로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수련은 그 과정을 견디는 시간이었다.


이번 주


 선생님을 만나고 오니, 과거에 내가 무언가를 결정하고 일을 진행했던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텍스트 속 한 줄로 받아들였던 내용이 진짜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었는지, 보였다. 이제 겨우 한 줄 이해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는구나 싶었다. 


 빨리 결정하고, 전달해주면 나뿐만 아니라 타인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비합리적인 신념이었을지도 모른다. 



신발을 신고 나오려고 하는 나를 향해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 과정을 한번 즐겨보세요."


뭔가 목표를 세우면 해내는 것만 향해서 돌진했던 나에게,

이 문장은 메아리처럼 울린다. 아직도.



그동안 나는 목표 >>>>> 즐거움.

이렇게 살았었구나.


불확실해도 괜찮은 걸.

그동안 받아들이지 않은 채 살고 있었다. 



#마흔살자아탐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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